여태까지 10번의 경주에서 단 한 번도 2착을 벗어난 적이 없는 연대율 100%의 레몬 팝. 첫 G1 도전이지만, 무대가 바뀌어도 그 강력한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중상 연승 G1 탈취! 중후반의 "持ったまんまで"를 여유롭게 달리다로 번역했는데, 이건 정확하게는 고삐를 쥐기만 하고 달린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말의 속력을 고삐를 억누른다던지 하면서 제어하는 게 아니라, 달리고 싶은대로 달리게 놔두는, 아직 여유롭다는 의미입니다.
안정된 레이스와 압도적인 승리를 이어가, 퍼펙트라 일컬어진 말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암말로 제한한다면 메지로 라모누만큼 그 칭호에 어울리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1983년, 청록모의 품격 있는 마체, 이마에는 커다란 유성이 있는 보기 좋은 모습과 함께 홋카이도 메지로 목장에서 태어난 메지로 라모누는, 1985년 가을에 데뷔를 맞이해, 달릴 때마다 평가를 높여간다. 신마전에서는 2착과 대차로, 2전째 케이세이배 3세 S에서는 숫말인 다이신 후부키에게 꺾여 4착으로 끝났지만, 칸기쿠상을 간단히 이기고, 테레비도쿄상 3세 암말 S에서는 다이나 페어리를 나란히 달릴 틈도 없이 추월해 3마신 반차의 압승. 결국 4전 3승으로 이 해의 최우수 3세 (현 2세) 암말로 선출된다. 1986년 새해 초전의 퀸 C에서..
『3강 그랑프리』 일본마로서 최초로 재팬 컵 제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카츠라기 에이스는, 그 후 아리마 기념(G1)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종마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 말을 들은 니시우라 기수는, 「앞으로 1년만 더 하면 더 강해질 텐데. 이 얼마나 꿈도 없는 이야기인가」 라고 무의식 중에 탄식했다고 한다. 다만, 현역 시절에 모든 것을 불태우고 만 말은, 종마로서의 가치, 성적에도 악영향이 있다고도 하는 것을 생각하면, 조기 은퇴도, 그건 그것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듣고 격분한 것은, 심볼리 루돌프 진영이었다. 만약 아리마 기념을 놓친다면, 카츠라기 에이스에게 설욕할 기회는 영원히 잃게되는 것이다. 킷카상에서 재팬 컵으로 진행된 가혹한 로테이션 때문에, 당초 심볼..
명마란, 수많은 일화로 채색되어, 일화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사츠키상, 타카라즈카 기념, 아리마 기념 등을 제패해 천마라 불렸던 토쇼 보이와, 레코드 타임으로 마이니치 왕관을 승리한 시비 퀸은, 같은 레이스에서 데뷔했다는 인연을 갖고 있다. 두 말이 은퇴한 후 1980년, 이 두 마리 사이에서는, 칠흑의, 벨벳 같은 피부를 가진 망아지가 태어난다. 미스터 시비다. 시비라는 건, 태어난 고향인 치기라 목장의 머릿 글자 (Chigira Bokujyou). 마명에 담긴 기대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사실 이 미스터 시비 이전, 1930년대에도 초대 「미스터 시비」는 달리고 있었지만, 큰 레이스를 승리하지 못하고 잔디를 떠났다. 꿈은, 2대째에게. 혈통이 좋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
『교착 상태 속에서』 그런 와중, 팡파르, 그리고 게이트 입장 후 머지않아, 싸움의 막이 올랐다. 스타트 신호,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기세 좋게 튀어나온 것은, 역시나 카츠라기 에이스였다. 스타트 후 곧바로 선두에 선 카츠라기 에이스는, 그 후에도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후속을 떼어낸다. 3마신, 5마신... 그 차는 순식간에 벌어져 간다. 카츠라기 에이스를 쫓을 것은, 그 누구도 없다. 관객석 맞은편 정면 근처에서는, 카츠라기 에이스와 2번째 이후의 말과의 차는, 최대 20마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반대로, 카츠라기 에이스의 도주에 의해 형성된 페이스는, 분명히 느린 것이었다. 800m 통과 타임이 49초 4. 사쿠라 신게키가 광기의 하이페이스로 끌어당겨 일본 레코드 결착이 된 제 1회 재..
『암흑의 별』 카츠라기 에이스는, 확승을 기대하고 있었을 터였던 천황상 가을(G1)에서, 또다시 미스터 시비를 부러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대로 끝낼 수 없다」 그런 진영의 마음을 반영해, 카츠라기 에이스의 다음 레이스로는, 재팬 컵(G1)이 선택되었다. 타카라즈카 기념 우승을 비롯해 중상 6승의 실적이 있는 카츠라기 에이스는, 순조롭게 일본대표마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이 해의 재팬 컵에서 일본대표로 선출된 것은 원래 여섯 마리였지만, 공영대표 츄오 리갈이 직전에 골절해버리고, 천황상 가을(G1)에서 2착을 한 투덴햄 킹도 출주를 사퇴해, 실제로 출주하는 일본마는, 겨우 네 마리라는 허전한 머릿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마의 재팬 컵 첫 제패에 거는 경마계의 기대는, 유례없을 ..
『의도를 넘어서』 마이니치 왕관(G2)에서는, 카츠라기 에이스에게는 오랜만의 실전인 것도 있어, 니시우라 기수는 처음에, 다른 말에게 선두를 서게 보내고 2, 3번째의 좋은 위치에서 레이스를 진행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츠라기 에이스는 오로지 주역이 되지 못한 불만을 풀겠다는 듯이, 니시우라 기수의 의도를 넘어 움직였다.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좋은 기세로 뛰쳐나온 카츠라기 에이스는, 격이 다른 스피드로 곧바로 선두에 선 것이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스타트의 좋은 점은, 니시우라 기수에게 있어서는 큰 오산이었다. 카츠라기 에이스는, 심볼리 요크에게 쿡쿡 찔리는 듯한 형태가 되면서도, 그리고 니시우라 기수가 억누르려고 하는 고삐에도 신경쓰지 않고, 선두를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카츠라기 에이스는 니시..
『오르지 않는 평가』 이렇게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구세대 강호들을 격파한 카츠라기 에이스였지만, 이 시점에서 그가 명마로서 평가 받았는가, 고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당시 팬들의 인식에서는, 카츠라기 에이스라 하면, 전년의 클래식에서 미스터 시비에게 전혀 미치지 못했던 말, 이라는 것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카츠라기 에이스가 클래식 실전에서 미스터 시비에게 계속 졌던 것은 사실이다. 교토신문배에서 이겼다고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트라이얼 레이스에서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해 봄, 그들 세대의 왕자인 미스터 시비는, 다리 불안으로 휴양중이었다. 마침 이 시기에 본격화 되어 경마계의 정점을 탈취한 듯 보이는 카츠라기 에이스였지만, 미스터 시비 부재중에 아무리 승리를 쌓아도, 그로 인해 미스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