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6월 12일생.
2013년 12월 8일 사망.
수컷. 갈색 털. 유슌 목장(히다카) 산.
아버지 : 노노알코, 어머니 : 쿠니노 키요코 (모부 : 다이 코터)
나이토 시게하루 구사 (릿토)
통산 성적은 38전 11승 (구 4~8세 때).
주요 승리는 아리마 기념(G1), 교토 금배(G3), 한신 경마장 신장 기념(OP).
※ 이 글은 열전마의 현역 당시 마령 표기에 따라 구 연령(세는 나이) 표기를 사용합니다.
『충격의 그랑프리 호스』
아리마 기념이라 하면, 팬 투표에 의해 선택된 서러브레드들의 「드림 레이스」이며, 또한 일본 경마의 1년을 마무리하는 연말을 대표하는, 팬들에게 일본 더비와는 다른 의미로 친숙한 대형 레이스다. 20세기 말 무렵부터 단거리 전선이나 더트 전선도 이전보다 확실히 주목을 받게 되어 그 이전과는 크게 달라진 일본 경마지만, 그럼에도 천황상·가을, 재팬 컵에서 아리마 기념으로 이어지는 가을의 중장거리 G1 전선은 오늘날에도 일본 경마의 꽃이며,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리마 기념을 이긴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명마의 증거가 된다.
그런 아리마 기념 승리마 중에서도 한층 더 다른 색깔을 띠고 있는 말이, 바로 1991년 기존의 레코드를 1초 1 줄인 2분 30초 6의 위협적인 레코드로 달려나가 압승한 다이유우사쿠다. 그가 기록한 아리마 기념 레코드는 2003년 심볼리 크리스 에스가 2분 30초 5를 기록할 때까지 12년 동안 깨지지 않고, 아리마 기념 레이스 레코드로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다.
다이유우사쿠라는 서러브레드는 「아리마 기념을 이겼다」라는 빛나는 실적만드로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는 특이함이 있다. 그가 생애 최대..라기 보다, 아마도 유일하다 해도 좋은 영광의 무대가 되는 나카야마 경마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대다수 팬들의 반응은,
「뭐하러 나온 거야」
라는 정도였다. 당시의 아리마 기념은 일본 경마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중장거리 레이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격식을 자랑하는 레이스의 하나로 여겨질 뿐 아니라, G1 중에서도 변수가 적은 레이스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레이스에 섞여 들어 온 그는 틀림없이 이질적인 존재이며, 진심으로 승부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다. 하물며 그 해 아리마 기념 출주마 중에는, 당시 절대적인 왕자로 불리던 명마 메지로 맥퀸까지 있었다. 단승 배당 13790엔으로 15마리 중 14번 인기에 불과했던 다이유우사쿠는, 비웃음을 받으며 출주한 그 레이스에서, 메지로 맥퀸을 비롯한 강호들을 한번에 꺾어버렸다. 그 엄청난 변수의 충격은 다음날의 레이스 평론에서
「세기말을 불합리한 말이 달려나갔다」
라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다이유우사쿠의 아리마 기념은 그저 요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을 우리에게 남겼다. 계속해서 이어져 가는 아리마 기념의 역사 속에 찬연히 빛나는 영광과 함께, 확실하게 새겨져 있는 그가 걸었던 길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다이유우사쿠』
다이유우사쿠는 1985년 6월 12일 몬베츠의 유슌 목장(현 마치카네 목장)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노노알코는 세계적인 씨수마, 니아크틱의 아들이다. 니아크틱 산구로서는 노던 댄서가 압도적인 지명도를 자랑하고 있지만, 노노알코도 영국 2000 기니 등 G1 4승을 포함해 10전 7승이라는 실적을 남겨, 일류마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성적을 남기고 있다. 일본 수입 전 유럽에서도 공용되었던 노노알코는, 프랑스 2000 기니마 메리노, 아일랜드 1000 기니마 케이티즈(히시 아마존의 어머니)를 배출했고, 일본에 수입된 뒤에도 G2를 3승한 카시마 윙 등 많은 중상마를 배출하며 꽤나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이유우사쿠의 어머니는 1승마인 쿠니노 키요코다. 그녀의 산구 중 다이유우사쿠 이외에 활약한 말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고야 경마에서 15승을 거둔 다이 소닉(아버지 카네 미노부) 정도다. 다만 그녀의 어머니 쿠니노 하나는 빅토리아 컵(현 엘리자베스 여왕배)와 교토 암말 특별 등 6승을 거둬, 혈통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당시의 유슌 목장은 목장의 방침으로 저렴한 종마를 사용해 영세 마주여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말의 생산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 노노알코는 종부료가 꽤나 높은 부류에 속해 있었다.
쿠니노 키요코에게 노노알고를 교배한 것은 유슌 목장 사람들이 쿠니노 키요코에게 기대했다는 증명이다. 아버지가 노노알코인 다이유우사쿠는, 태어났을 때 당연하게도 목장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이봐, 네 아버지는 굉장한 말이었다고』
갓 태어난 다이유우사쿠는 목장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기 충분했다. 그의 마체는 밸런스가 잡혀 있어 우연히 말을 찾기 위해 유슌 목장에 와 있던 중앙경마의 나이토 시게하루 조교사가 눈독을 들였고, 곧바로 자신의 구사에서 맡겠다고 결정할 정도였다. 나이토 조교사는 다이유우사쿠에 대해
「잘하면 준오픈 정도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값싼 말 중에서 그럭저럭 달리는 소재를 잘 찾아낸다고 정평이 나 있던 나이토 조교사의 확실한 보증은, 중소마주를 타겟으로 하는 말 산업을 목표로 하던 유슌 목장에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다이유우사쿠는 목장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었다. 성장한 다이유우사쿠의 움직임에서는 경주마로서의 성공을 예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태어날 때에는 좋았던 마체의 밸런스조차 성장하면서 점점 나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다이유우사쿠는 서러브레드로서는 상당한 늦둥이라고 할 수 있는 6월 12일생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꽤 체구가 작은 편으로, 동기 말들과 비교하면 말의 격 또한 확실하게 뒤떨어져 있었다. 체질이 약했던 데다 허리의 부드러움도 심해 더욱 강하게 몰면 곧바로 지치고 컨디션이 무너지기 때문에, 꽤 성장할 떄까지 제대로 말을 몰지도 못했다고 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다이유우사쿠에게 기대했던 당시의 목장장은, 너무나 큰 다이유우사쿠의 참상에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늘 다이유우사쿠를 붙들고
「이봐, 네 아버지는 굉장한 말이었다고. 너희 할머니도 6승이나 올렸다고. 너에게는 힌도스탄과 다이 코터, 네버 비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라고 주절주절 타이르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말에게도 좋은 점은 있는 법이라, 당시의 다이유우사쿠는 그런 설교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들을 정도로 얌전한 말이었다. 단지 그 얌전함이 화를 부른 건지, 다이유우사쿠는 동기의 말들에게서는 언제나 따돌림을 당해 쓸쓸하게 혼자 덩그러니 있는 일이 많았다.
이처럼 목장 시절의 다이유우사쿠의 평판은 엉망이었다. 마체의 완성도 늦어 목장에서 릿토 트레이닝 센터로 무사히 보내졌을 때는, 이미 동기 말들의 대부분이 경마장에서 데뷔를 마친 3세 12월이 되어서였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렇게 보자면 다이유우사쿠가 중앙 경마에서 데뷔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를 맡기로 했던 나이토 조교사도 실제로 설장한 모습을 보고
「경솔했다...」
하고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사에 들어갈 무렵의 다이유우사쿠는 나이토 조교사가 일찍이 상상하고 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 버리고 있었다. 자신이 발굴해 온 다이유우사쿠의 성장을 기대했던 나이토 조교사는,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거야」
하고 뉘우친 그는, 이 말을 맡겠다고 결정해 버린 것을 빠르게 후회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도 없다.
이런 느낌이었으니 구사에 들어간 다이유우사쿠에게 사람들의 기대가 모일 리가 없다. 게다가 다이유우사쿠는 체질이 허약해 다른 말이 먹고 있는 사료가 체질에 맞지 않는다. 나이토 조교사는 그런 곤란한 다이유우사쿠에게 구사에 들어오고 활약하기 시작할 때까지의 잠시동안, 구사 사람들의 잔반을 먹이고 있었다고 한다.
※ 모든 열전은 원작자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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