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한 데뷔』
다이유우사쿠가 데뷔조차 하지 못하고 꾸물대는 사이, 다이유우사쿠와 같은 해에 태어난 말들이 달린 1988년 숫말 클래식 전선은, 사츠키상(G1)이 야에노 무테키, 일본 더비(G1)이 사쿠라 치요노 오로 결착이 나며 봄이 끝나게 되었다. 참고로 이 세대는 레벨이 높은 세대로 알려져 있으며, 야에노 무테키는 2년 반 후에 천황상·가을(G1)도 승리했고, 봄에는 부진에 빠져있던 사커 보이도 가을에는 4세로서는 처음으로 마일 챔피언십(G1)을 압승했다.
그러나 이 세대 중에서도 정말로 강한 말은 봄의 클래식 전선과는 무관한 곳에 있었다. 카사마츠에서 온 괴물·오구리 캡과 그 숙명의 라이벌·슈퍼 크릭이다. 클래식 등록을 하지 않았던 오구리 캡은, 봄에는 「뒷길」이라 불리는 중상 레이스에서 다른 말들이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승리해 나가고 있었지만, 가을이 되어 마침내 천황상·가을에서 고마와의 대결을 맞이하고 있었다. 또한 슈퍼 크릭도 고장으로 인한 휴양이 강제되어 자복의 시간을 보낸 봄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킷카상(G1)에서 개화의 때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가을이 되며 드디어 그들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 화려한 세계의 뒤에서, 다이유우사쿠는 동기들이 만들어내는 사투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었다. 다이유우사쿠의 데뷔전은 4세 10월 교토 경마장·400만 이하다. 이것은 봄 클래식 전선은 커녕 킷카상의 1주일 전이었다. 참고로 다이유우사쿠가 데뷔한 날, 도쿄경마장에서는 천황상·가을에서 타마모 크로스와 오구리 캡의 격돌에 모두가 들끓고 있었다.
후에 많은 동기 명마들과 함께 G1 승리마로 이름을 늘어놓게 되는 다이유우사쿠지만, 데뷔전은 다른 의미로 「일반적이지 않은」 레이스가 되었다. 강했다는 뜻이 아니다. 동기들에 비해 한참 늦은 데뷔전, 뒤에서 두 번째 인기로 출주한 다이유우사쿠는 더트 1800임에도 주파 타임이 2분 6초 7이라는 「굉장한」 타임으로 달려 나갔던 것이다. 덕분에 다이유우사쿠는 승리마로부터 13초나 뒤처진 장렬한 패배를 보여주고 말았다. 결과는 물론 꼴찌다.
이 타임차는 본래라면 타임 오버로서 출주 정지 처분이 내려지지만, 당시는 데뷔전에 한해 타임 오버의 룰이 적용되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 혜택에 힘입어 다음 출주로 후쿠시마의 미승리전에 나간 다이유우사쿠였지만, 이어지는 2전째의 잔디 1800m에서도 2분 0초 0이라는 타임으로 꼴찌 패배를 당했다. 2000m에서의 타임이라면 칭찬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1800m의 타임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다. 결국 다이유우사쿠의 4세 시절은 이 2전만으로 끝났다.
『생애 최대의 위기』
일반적으로 보면 2전 연속 이 정도의 참패로 끝난 말을 용케 은퇴시키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지방 경마로 옮기려고 해도 획득 상금 제로여서는 아무래도 인수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은퇴시킨다면 「승마」가 될 수 밖에 없다. 나이토 조교사도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하지만, 구사에서 다이유우사쿠의 너무나 맑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정에 얽매여 버린다.
「조금만 더 상태를 지켜볼까」
라고 나이토 조교사가 다시 생각해 보게 한 것은 역시 말의 덕(徳)일까.
나이토 조교사는 다이유우사쿠의 마주인 하시모토 코에이 씨에게
「소질은 있을 터입니다. 손해에 손해가 될지도 모르지만, 좀 더 상태를 지켜봐 주세요」
라며 현역 속행을 호소했다. 당시 중앙 경마에서 구사에 말을 맡겼을 때 마주가 조교사에게 지불해야하는 예탁료는 월 50~60만엔 전후로 알려져 있었다. 마주의 허가 없이 말의 현역 생활을 늘릴 수는 없지만, 이런 성적으로는 빨리 은퇴시켜 다른 신마에게 기대를 걸고 싶어지는게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도 하시모토 씨는 나이토 조교사의 설득에 응해, 다이유우사쿠는 현역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전적을 보면 요행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다이유우사쿠의 마명의 유래는 하시모토 씨가 다이유우사쿠의 모부인 「다이 코터」와 손자의 이름인 「코우사쿠」를 붙여 「다이유우사쿠」로 이름 붙이려 했는데, 마명 등록 때에 「コ(코)」를 「ユ(유)」로 잘못 읽어 「ダイユウサク(다이유우사쿠)」로 등록되어 버린 것이다.
정말 왠지 모르게 이런 유래가 있는 쪽이 다이유우사쿠에게는 알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손자의 이름을 주려고 했던 하시모토 씨에게 있어 다이유우사쿠 또한 손자와도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름을 착각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한심한 손자다. 하시모토 씨는 못난 손자를 지켜보는 듯한 심경으로
「어쩔 수 없는 녀석이네」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다이유우사쿠를 어디까지나 따뜻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미승리 전문과 함께』
이렇게 나이토 구사에 남을 수 있었던 다이유우사쿠였지만,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그때까지 다이유우사쿠를 담당하고 있던 구무원이 퇴직했기 때문에, 다이유우사쿠의 새로운 담당 구무원을 정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그를 담당하려는 구무원이 없다.
구무원의 생활은 정기적인 급여 외에, 담당마 획득 상금의 5%라는 보너스가 있다. 담당마가 상금을 벌어줄수록, 보너스 수입은 늘어난다. ...반대로 담당마가 상금을 벌어주지 않는다면 보너스 형태의 수입은 없다.
보너스라는 시스템은 말하자면 담당마의 획득 상금과 연동되는 「성과급」 시스템이지만, 말의 경우 아무리 손을 써도 소질이 없는 말은 달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소질마의 담당을 결정할 때나, 돈을 잘 벌 수 있는 말에 일시적인 담당 교체가 필요할 때 등 여러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그 때문에 최근에는 구무원의 보너스를 전액 구사에서 모아놓고, 미리 정해진 룰에 따라 분배하는 방법을 취하는 구사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나이토 구사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은 옛날 그대로의 보너스 제도를 그대로 채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었으니 다이유우사쿠의 인수자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조교사나 기수와 달리 한 명의 구무원이 동시에 담당할 수 있는 말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 귀중한 자리 중 하나를 짐덩이가 차지해 버리면 보너스를 받지 못해 곧바로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게다가 미승리인 채 5세가 되어버린 말은 중앙 개최 출주권마저 잃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약한 다이유우사쿠가 다시 중앙 개최 레이스의 출주를 해내기 위해서는, 어쨌든 어딘가의 로컬 개최 조건전으 1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먼 로컬 경마장까지 원정을 갔다가 참패를 당해 돌아온다면 의욕이 날 리가 없다. 그래서 이길 희망이 있다면 좋겠지만, 이길 희망이 있을 정도라면 이런 사태에 빠지지 않는다.
결국 다이유우사쿠는 나이토 구사에서 가장 어리고, 동료들 사이에서 「미승리마 전문」 등으로 불리던 구무원이 담당하게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1승마를 한 마리 담당했을 뿐, 그 외에는 미승리마 밖에 담당한 적이 없었다.
『말의 보은』
이렇게까지 해서 현역 생활을 계속하게 된 다이유우사쿠이니 이대로 이기지 못하면 벌 받을게 틀림 없다. 5세가 되어서도 한동안은 변변치 않은 성적이 계속된 다이유우사쿠였지만 이 해의 3전째, 통산 5번째가 되는 니가타의 400만 이하에서 갑자기 폭주했다. 12마리 중 10번 인기로 완전히 인기가 낮았던 그가 갑자기 1착으로 골에 뛰어들었고, 게다가 11번 인기마가 2착으로 연달아 들어오는 바람에 게이트 연승 31640엔의 만마권을 연출한 것이다. 이에 나이토 구사의 사람들도 경악했다.
하지만 이들의 경악은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첫 승리를 올린 다이유우사쿠는 그 후 다시 태어난 듯 제대로 달리기 시작해, 착실하게 전적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마일에서부터 2000m 전후의 거리에서 조금씩 이기게 된 다이유우사쿠는 여름까지 3승을 올리며 첫 중상인 타카마츠노미야배(G2)에도 출주했다. 레이스는 메지로 아르당이 승리하고 7착으로 패배했다고는 하지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생각할 수도 없던 대약진이다. 이후에도 다이유우사쿠의 활약은 멈추지 않고, 900만 이하의 평지전에서는 한신 잔디 1200m의 레코드를 기록했다.
「역시 다이유우사쿠는 달린다고!」
숨겨져 있던 능력이 밝혀짐에 따라 나이토 조교사는 완전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까지는 잔반을 받았던 다이유우사쿠였지만, 이 시기부터는 생목초나 인삼 그리고 어째서인지 클로렐라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대우 개선을 얻어낸 것이다.
5세 때의 다이유우사쿠는 무려 16전을 달려 5승을 거두며, 7000만엔이 조금 넘는 상금을 벌어들였다. 이 시점에서 관계자들에게 한 차례 보은을 끝낸 감이 있었지만, 다이유우사쿠가 정말로 강해지는 것은 아직 앞으로의 일이었다.
※ 모든 열전은 원작자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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