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열전마의 현역 당시 마령 표기에 따라 구 연령(세는 나이) 표기를 사용합니다.
『때가 왔노라』
고향의 소멸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마모 크로스는 400만 이하 클래스에서 저공비행을 이어나갔다. 당시의 타마모 크로스는 더트를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는데, 잔디에서의 성적이 너무나도 심각했기 때문이다. 데뷔전에서 7착으로 패배한 것은 앞서 말한 바 있고, 미승리전을 승리한 후 다시 한 번 잔디를 달렸던 레이스에서는 제 1코너 직전에서 낙마해 경주 중지가 되었다. 그에 반해, 더트에서는 이길 수는 없어도 2착, 3착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더트에서 타마모 크로스가 이기지 못한 것은, 마군 속에서 경마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타마모 크로스의 낙마는 바로 앞에 있던 말이 낙마했을 때, 피하지 못하고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마 모두 부상은 없었지만, 타마모 크로스는 이때 무서운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 마군을 무서워하게 되어버렸다.
그런 타마모 크로스가, 어느샌가 「잔디에 서투른 더트마」, 「특기인 더트에서도 400만 이하를 이기면 한계를 맞이하겠지」라고 보여진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을을 맞이한 타마모 크로스였지만, 그 전적은 변함없었다. 400만 이하를 계속 달려 5전째, 아직도 400만 이하를 승리해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통산 성적은 8전 1승이 되어있었다. 이 시점의 타마모 크로스는 G1은 커녕 중상과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 있는, 그저 조건마일 뿐이었다.
그런 타마모 크로스의 큰 전환점이 된 것은, 미나이 기수의 말이었다.
「슬슬 잔디를 달리게 해보죠」
미나이 기수는, 타마모 크로스의 지금까지의 8전 중 6전에서 고삐를 잡은 주전 기수다. 미나이 기수도 타마모 크로스는 좀 더 달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특기라고 생각되던 더트에서도 한계를 맞이한 타마모 크로스에게는, 무언가 계기가 필요했다.
타마모 크로스는 1987년 10월 18일에 개최 예정인 교토 잔디 2200m, 400만 이하의 조건전에 등록했다. 400만 이하의 출주는 실로 6전째이지만, 잔디 레이스 출주는 5개월만이고, 그 5개월 전의 레이스는 낙마에 의한 경주 중지로 제대로 레이스를 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7개월 전의 데뷔전 이래의 2번째 잔디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안녕히, 고향이여』
오랜만에 잔디 레이스에 도전하게 된 타마모 크로스. 그의 인기는 최근 3레이스가 2착, 3착, 3착으로 좋았음에도 16두 중 5번 인기에 그쳤다. 최근 레이스가 모두 더트였다는 점, 그리고 아버지가 시비 크로스라는 수수함이 그를 인기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당시 팬들은 누구 하나 앞으로의 그의 모습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날 선두 뒤 집단에 위치한 타마모 크로스는 직선에서 무시무시한 말각을 보이며,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후속과 7마신차를 내며 압승해 버렸다. 이때의 말각에 대해 질문받은 미나이 기수는
「뻗고뻗고, 어디까지고 뻗어나오는걸. 나도 타다가 깜짝 놀랐어. 말이라는 건, 정말 모르겠네요」
라고 밝혔다. 이날의 승리 타임인 2분 16초 2는, 같은 날 같은 코스에서 개최된 같은 4세마... 그것도 킷카상을 노리는 말들의 트라이얼 레이스인 교토 신문배(G2)의 승리 타임보다 0초 1 빠른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고작 1전만을 압도적인 힘을 보이고, 그 후 완전히 활약하지 못하는 말은 드물지 않다. 경주마가 진정한 충실기를 맞이했다고 하기 위해서는, 그 실력을 안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타마모 크로스의 다음 레이스는 전과 같이 잔디의 후지모리 특별(400만 이하)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도 훌륭하게 기대에 부응하며, 8마신차로 다시금 압승을 거뒀다.
「타마모 크로스는 진짜다...」
경마계에는 그런 수군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연투로 킷카상에 나가라고 권하는 목소리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겨우 도약의 때를 맞이하고 있던 타마모 크로스의 약진의 그늘에서, 후지모리 특별의 당일 홋카이도에서는 그의 고향인 니시키노 목장이 운명의 날을 맞이했다. 이날, 자산 정리를 거의 마친 니시키노 목장의 등기가 마침내 고쳐 써진 것이다. 니시키노 목장은 니이캇푸에서, 그리고 지상에서 완전히 소멸되었고, 타마모 크로스는 진출의 발판을 확보한 그 날에 고향을 영원히 잃고말았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향의 소멸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진 타마모 크로스는, 그 후 지금까지의 부진이 거짓말이라는 듯이 쾌진격을 개시했다.
후지모리 특별에서 잔디 레이스 2연승을 장식한 타마모 크로스는, 핸디캡전의 나루오 기념(G2)에 격상 도전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하급 조건전만 뛰었던 타마모 크로스에게는 이것이 첫 중상 도전이 되었다. 출주마 중에는, 전년도 한신 3세 스테이크스(G1)의 승리마 골드 시티, 또한 전년도 킷카상 승리마 메지로 듀렌이 있었다. 경주마로서의 스타트는 크게 뒤처졌고, 심지어 그 후에도 최후방에 정체되어 있던 타마모 크로스였지만, 겨우내 일선급의 말들이 보이는 위치까지 올라온 것이다.
오바라 조교사가 나루오 기념을 선택한 것은
「핸디캡이 가벼울 때 중상을 달리게 해보고 싶었다」
라는 이유에 불과했다. 실제로, 연승 중이라고는 하지만 일섭급과의 대전이 전무한 타마모 크로스는 핸디캐퍼*들에게도 그다지 마크되지 않아, 53kg이라는 근량을 받았다. 톱 핸디캡의 메지로 듀렌이 58kg으로, 5kg의 차이는 크다. 무엇보다 2500m의 이 레이스에서 강한 말을 상대로 좋은 달리기를 한다면, 다음 봄의 천황상·봄(G1)으로의 전망도 밝아진다.
(* 경주 성적이나 최근 상태 등을 통해 말들을 평가해 핸디캡을 부과하는 JRA의 심사위원.)
처음, 타마모 크로스의 스타트는 끔찍했다. 출발이 늦어 최후방에서 경마를 하게된 것 뿐 아니라, 레이스 자체도 인기가 적은 메이쇼 에이칸이 1000m 1분 6초 8이라는 상당한 슬로우 페이스로 이끌었다. 이런 페이스로는, 앞의 말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오늘은, 경마가 안되겠네...」
미나이 기수조차, 한때는 승부를 포기했다.
『하얀 번개』
그러나 타마모 크로스의 독주는 그로부터 얼마 남지 않았다. 제 3코너 직전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타마모 크로스는, 그 후 순식간에 가속하며 G1마 2마리를 포함한 이날의 출주마들을 상대로, 그때까지 연승해 온 400만 이하의 하급 조건전과 차이를 전혀 알 수 없는 수준의 호각을 선보였던 것이다.
제 4코너 직전에서 앞을 물고 늘어지듯 올라가는 타마모 크로스의 반응을 느낀 미나이 기수는
「이거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할 수 있다」고 할 때가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뚫고 나가, 다른 말들을 크게 따돌리며 6마신차를 벌린 골. 승리 타임인 2분 33초 0은, 코스 레코드. 그 달리기는 더이상 조건마가 아닌, 일류마의 달리기였다. 고향 소멸 직후에 중상 첫 제패, 그것도 6마신차를 낸 타마모 크로스의 승리는 마치 고향의 묘비에 헌상한 듯 극적이었다.
오바라 조교사는, 이 레이스를 보고
「이 말은, 진짜다」
라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 생각은 오바라 조교사만의 것이 아니었다. 타마모 크로스의 강렬한 스퍼트에, 스탠드에서도
「마치, 하얀 번개다...」
라는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얀 번개」 ...그것은, 타마모 크로스의 아버지인 시비 크로스의 현역 시절의 별명이다. 현역 시절, 그 서투른 각질과 스퍼트에 걸 수밖에 없던 시비 크로스는 순백의 마체와 직선에서의 말각으로 인해 「하얀 번개」라 불렸다. 그 시비 크로스의 은퇴로부터 5년, 아버지와 같은 회색털의 마체를 가진 아들이 아버지보다 뛰어난 강렬한 말각을 무기로, 드디어 중상 전선에 올라온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타마모 크로스를 아버지와 같이 「하얀 번개」, 또는 「번개 2세」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루오 기념 3주 전에는 케이세이배 3세 스테이크스(G2)에서 9마리 중 8번 인기였던 시노 크로스가,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말각으로 쾌승했다. 시노 크로스도 타마모 크로스와 같은 시비 크로스 산구이며, 게다가 2세 때의 경매에서는 구매자가 없어 판매자에게 다시 돌아간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시노 크로스 그리고 타마모 크로스라는 2마리의 중상 승리마가 연이어 탄생함으로써, 「삼류 혈통」이었을 시비 크로스의 평가는 크게 바뀌었다. 처음 10만엔이었던 시비 크로스의 종부료가 이듬해 봄에는 200만엔으로 급상승했다고 한다.
스스로의 급격한 성장과 중상 진출, 그리고 아버지 시비 크로스의 재평가. 이렇게 타마모 크로스에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1987년에 99승을 올린 미나이 기수는, 첫 칸사이 리딩 기수로 빛나게 되었다. 인마일체로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딛은 타마모 크로스는, 이 해의 아리마 기념(G1)에는 출주하지 않고 연내의 레이스를 일단락 짓고, 대신 88년도의 이른 단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향의 소멸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진 「하얀 번개」 타마모 크로스였지만, 그의 시대는 코앞까지 다가왔다.
※ 모든 열전은 원작자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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