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상·가을 1번 인기』
마이니치 왕관(G2)에서 4세 외국산마 두 마리를 완전히 박살낸 사일런스 스즈카의 다음 레이스는, 5세가 되고부터 일관된 목표였던 천황상·가을(G1)으로 정해졌다.
천황상·가을(G1)이라 하면, 고마의 레이스 중에서도 최고의 격식을 자랑하고 일선급 고마들이 가을 제일의 목표로 하는 레이스다. 하지만, 타카라즈카 기념(G1)의 고마들에 이어 마이니치 왕관(G2)에서도 신진의 4세마 중 최강 클래스의 두 마리를 상대로도 변함없는 대도주극을 펼친 사일런스 스즈카를 본 사람들은, 3주 뒤 마이니치 왕관과 같은 도쿄 경마장에서 단지 200m만 더 긴 코스로 개최되는 천황상·가을(G1)에서도 같은 광경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마이니치 왕관(G2) 직후 사일런스 스즈카가 패배할 요소를 찾기가 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일런스 스즈카가 1번 인기가 되는 것은 이제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천황상·가을의 1번 인기라고 하면 널리 알려진 무서운 징크스가 있었다. 천황상·가을은 예로부터 1번 인기가 이길 수 없는 「마의 레이스」로 알려져 있었다.
일찍이 1964년에 신잔이 1번 인기로 천황상·가을을 이긴 후, 1983년에 미스터 시비가 전과 같이 1번 인기로 천황상·가을을 이길 때까지 무려 19년 간 1번 인기가 이기지 못한 적도 있다. 그리고 1987년에 닛포 테이오가 이긴 것을 마지막으로 그 무서운 징크스는 다시 되살아났고, 그 이후로는 다시 1번 인기가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닛포 테이오의 우승 이후 이 해까지, 천황상·가을에서는 10마리의 1번 인기마가 전부 패배했다.
게다가 패배한 말들이 모두 심상치 않다. 그 말들을 나열해 보면, 이 레이스가 마의 레이스라 불리는 이유도 알 수 있다.
4세부터 6세까지, 3년 연속 1번 인기가 되었던 괴물 오구리 캡은 끝내 단 한 번도 승리의 미주를 맛보지 못했다. 천황상 춘추 연패를 목표로 했던 메지로 맥퀸은 후속과 6마신 차를 내며 선두로 들어왔지만, 18착 강착 처분의 쓰라림을 겪었다. 절대적 우승 후보 토카이 테이오는 광기의 하이페이스의 격류 앞에 속수무책으로 마군에 삼켜졌다. 최후의 스테이어·라이스 샤워도 천황상 춘추 연패의 야망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15연속 연대를 자랑하던 비와 하야히데는 레이스 중의 고장으로 인해 연속 연대 기록은 커녕 경주 생명까지 끊어졌고, 그 동생이자 5관마 나리타 브라이언마저 무참한 패배를 당했다. 실력파 사쿠라 로렐은 기수의 기승 미스로 여력이 남고도 닿지 못했고, 그 해에 4세로 천황상·가을을 제패, 이듬해에 연패를 노린 버블껌 펠로우는 암말*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1번 인기로 천황상·가을에 도전하는 말은 이전의 평가가 높으면 높을수록, 레이스 후 팬들의 말문이 막히는 시간과 한숨은 길어지고 무서운 징크스만이 그 존재감을 더해 간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이런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 여제 에어 그루브)
「후추*에는, 마물이 살고 있다」
라고. (* 도쿄 경마장. 도쿄도 후추시에 위치함)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일런스 스즈카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의 팬들에게 있을 수 없는 예상이었다. 일선급의 고마 대부분은 타카라즈카 기념(G1)으로 결착이 난 상대 뿐이었고, 4세마에서도 톱 클래스의 참전은 없었다.
「사일런스 스즈카라면, 절대로 괜찮아」
과거에 몇 번이고 배신당했던 기대였지만, 올해는 그걸로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11월 1일 1번 틀 1번 게이트 1번 인기』
이 해의 천황상·가을(G1)은 11월 1일에 개최되었다. 천황상·가을이라 하면 제 1회는 12월에 개최되어, 그 후에도 한동안 11월 개최가 되었지만 재팬 컵의 창설 이후는 실시 시기가 앞당겨져 언젠가부터 10월의 풍물시*가 되어 있었다. 11월의 천황상·가을은 92년에 렛츠고 타킨이 이겼을 때 이후 처음이다. (* 계절의 정취를 잘 나타내는 대표 물건이나 행사)
사일런스 스즈카의 게이트 번호는 우연히 1번 틀 1번 게이트*로 정해졌다. 원래부터 「안쪽 틀 유리, 바깥쪽 틀 불리」라고 하는 후추 2000m 코스의 안쪽 게이트를 뽑고, 게다가 안쪽의 임시 래치**가 빠지면서, 전혀 밟히지 않은 마장이 사일런스 스즈카의 앞에 펼쳐졌다. (* 일본 경마의 게이트는 한국과 다르게 몇 개의 게이트를 묶어 틀(枠=와쿠)가 있습니다. 1번 사진 참조. ** 임시 래치란 잔디 유지를 위해 주로의 경계선이 되는 래치(울타리)를 기존 래치보다 더 바깥에 설치해 안쪽의 잔디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주로의 잔디가 많이 훼손되면 임시 래치를 제거해 훼손되지 않은 마장이 드러나게 합니다. 2번 사진 참조.)
단승 마권 발매가 시작되자, 사일런스 스즈카의 마권만 팔려나가 당연하다는듯 압도적 1번 인기가 되었다. 11월 1일 1번 틀 1번 게이트 1번 인기. 사일런스 스즈카를 둘러싼 사람들이 그 뒤에 붙을 것으로 무엇을 생각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매스컴에게 작전에 대해 질문 받은 타케 유타카 기수는
「오버페이스로 갈 겁니다」
라고 말하며 웃었다. 언제나 립 서비스는 해도 다른 말에 대한 배려도 빠뜨리지 않는 타케 유타카 기수지만, 이때만큼은 이런 대사를 하고 있었다.
「천황상의 역사에 남을, 그런 레이스를 하고 싶다」
「어떻게 이길 것인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일런스 스즈카의 승리는 이 시점에서는 미래의 역사로 생각되고 있었다. 그건 결코 바뀌지 않는 사실. 단지, 일어나는 시기가 미래일 뿐.
그리고 찾아온 11월 1일, 도쿄경마장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었다. 후추에 산다는 마물의 그림자는, 맑은 가을 후추의 어디에도 없었다.
『완벽한 육체』
전장으로 향하는 사일런스 스즈카를 배웅한 관계자는, 사일런스 스즈카의 완성도에 완벽한 자신감을 갖고 보내고 있었다.
그때까지 사일런스 스즈카는 튼튼함이 장점이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무언가의 불안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마체가 가벼운 건 아닌가, 몸의 뒷부분이 살집이 나쁜 것은 아닌가, 레이스 전에 구사의 벽에 다리를 부딪힌다던가 ...다른 말에 비하면 과한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사일런스 스즈카에게 완벽을 요구했다. 완벽한 이상 앞에서는, 현실의 모습은 언제나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날의 사일런스 스즈카는, 그 완벽에 대한 요구에 전혀 흠잡을 데가 없었고, 금빛으로 빛나는 마체는 어느 곳이든 서러브레드의 아름다움을 모두 겸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절대적인 자신감이 뒷받침된 사일런스 스즈카는, 12마리 출주마의 최후미에 붙어 잔디에 모습을 드러냈다. 1번 틀이지만 마장 입장을 역순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워밍업은 일부러 바깥쪽 래치에 딱 붙어 달려갔다. 사람들이 그 웅대한 모습을 잘 볼 수 있도록. 이날의 도쿄경마장은 마치, 모든 것이 사일런스 스즈카를 위해 준비된 무대극 같았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은 명배우의 가장 큰, 그리고 가장 화려한 무대는 이렇게 막을 올렸다.
『궁극의 도망극』
이날도 가장 안쪽에서 뛰쳐나온 사일런스 스즈카는, 언제나와 같이 선두를 빼앗자 순식간에 후속과의 차이를 벌려 나갔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일런스 스즈카와 선두를 다툴지도 모른다던 사일런스 헌터의 요시다 유타카 기수도, 이 스피드는 따라갈 수 없다 보고 고삐를 억눌렀기 때문에 역시나 사일런스 스즈카의 나홀로 여행이 되었다.
하지만 이 날의 도주는 언제나처럼, 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달랐다. 2번째인 사일런트 헌터도 원래는 도주마로, 거기다 사일런스 스즈카와는 애초부터 스피드가 너무 다른 것도 있어 사일런스 스즈카의 상당히 뒤쪽으로 타협했다. 그리고 사일런트 헌터의 위치 자체가 마군으로 보면 「대도주」라고 해도 좋은 장소에 있었다. 그런데 사일런스 스즈카는 그 사일런트 헌터를 아득히 떨어뜨린 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사일런트 헌터와의 차이조차 5마신, 10마신... 세는 것이 어이없을 정도의 레벨로 벌어져 간다. 하물며, 거기서 더 떨어진 후속 마군과는 몇 마신 차였을까.
「이 말을 타면 즐거워요. 다른 말은 따라올 수 없으니까」
사일런스 스즈카의 스피드를 이렇게 평한 타케 유타카 기수지만, 이 날도 고삐를 쥐고 있는 채였다. 1000m 통과 지점의 랩 타임은 57초 4로, 200m 짧았던 마이니치 왕관보다도 빠르다. 당시의 천황상·가을의 레코드는 90년 야에노 무테키가 세운 1분 58초 2였는데, 만약 사일런스 스즈카가 후반에도 같은 페이스로 주파했다면 승리 타임은 1분 54초 8이 되는 광기의 랩 타임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말이라면 「광기」일지라도, 사일런스 스즈카에게는 광기도 뭣도 아니다. 그런 광경은 그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었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이긴다. 그 역사를 의심하는 일 따위는 전혀 없는 스탠드에서는 도망자가 제 3코너에 접어들기 전부터, 벌써 대환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그의 승리를 미리 축하하는 것처럼.
─그리고, 사일런스 스즈카의 모습이 큰 느티나무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 모든 열전은 원작자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마 열전 > 사일런스 스즈카 열전 : 영원한 환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일런스 스즈카 열전 : 영원한 환상을 끝내며 (0) | 2024.08.05 |
---|---|
사일런스 스즈카 열전 : 영원한 환상 完 (0) | 2024.08.05 |
사일런스 스즈카 열전 : 영원한 환상 7 (0) | 2024.07.25 |
사일런스 스즈카 열전 : 영원한 환상 6 (0) | 2024.07.22 |
사일런스 스즈카 열전 : 영원한 환상 5 (0) | 2024.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