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도 사일런스 스즈카』
타카라즈카 기념을 제패함으로써 G1마의 반열에 오른 사일런스 스즈카지만, 하시다 조교사 측이 가장 이기고 싶은 레이스는 다른 레이스였다. 일본의 중앙 경마에서도 최고의 전통과 격식을 자랑하며, 무엇보다 중거리 최강마를 결정짓는 레이스로 꼽히는 천황상·가을(G1)이다.
타카라즈카 기념 후 자신의 구사에서 휴양에 들어간 사일런스 스즈카였지만, 가을의 일정을 생각하면 그리 한가히 있을 틈은 없었다. 천황상·가을 전에 스텝 레이스를 하나 거쳐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타카라즈카 기념 2달 뒤에 다시 레이스를 출주한다는 예정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사일런스 스즈카의 가을 로테이션은 중거리의 왕도, 즉 마이니치 왕관(G2)를 거친 후에 천황상·가을(G1)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되었다. 마이니치 왕관은 천황상·가을의 전통적인 스텝 레이스다. 하지만, 이 예정이 발표되자 그때까지 마이니치 왕관의 출주를 예정하고 있던 말들이 차례로 출주를 회피해 갔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이길 수 없다」
라는 것이다. 예년 등록 두수가 풀게이트를 넘어서 제외마가 나오는 일도 많은 마이니치 왕관이, 이 해에는 겨우 9마리라는 적은 수로 개최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런 가운데 구태여 마이니치 왕관에 도전하는 말들은, 말하자면 싸우기 전부터 선별된 라이벌들이다. 이들은 사일런스 스즈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출주해 온 이상, 싸우기 전부터 레이스를 포기할 의지 따윈 없다. 아니,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타도 사일런스 스즈카」가 틀림없다. 특히, 사일런스 스즈카를 쓰러뜨리는데 특별한 열정을 불태우는 말이 출주마 중 두 마리가 있었다.
『불패마 두 마리』
타도 사일런스 스즈카에 불타는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전년의 3세 왕자 그래스 원더다. (*본문은 1998년 당시의 구 마령 표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표기로는 2세)
그래스 원더는 원래 3세 때 데뷔 전부터 「거물 외국산마」로 소문이 나, 미호 트레이닝 센터에서 큰 기대를 모았었지만 그의 실제 성적은 그 큰 기대를 더욱 상회하는 것이었다. 신마전부터 3연승, 그것도 레코드 타임으로 케이세이배 3세 스테이크스(G2)를 제패해 중상 첫 제패를 장식하고, 이어지는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G1)에서도 오랜 시간 깨지지 않고 「불멸의 레코드」라고까지 들었던 린도 셰이버의 1분 34초 0의 레코드를 또다시 간단하게, 그것도 큰 폭으로 깬 1분 33초 6의 경이로운 타임으로 압승한 것이다. 4전 4승으로 무패인 채 3세 왕자로 빛날 무렵 그래스 원더에게 주어진 이명은, 어느샌가 「거물」에서 「괴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래스 원더도 4세가 되고 나서는 비운에 눈물을 흘렸다. NHK 마일 컵(G1)을 목표로 조정 중에 골절이 판명, 4세 봄이 전부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런 3세 왕자가 칼을 갈기를 반년, 부상도 나아 마침내 전선으로 복귀해 왔다. 그래스 원더에게 부활을 건 최초의 싸움이, 마이니치 왕관(G2) 이었다.
또 한 마리의 강적은, 그래스 원더 부재중에 NHK 마일 컵(G1)을 제패한 엘 콘도르 파사다.
엘 콘도르 파사는 데뷔가 늦어지는 바람에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에는 때를 맞추지 못했지만, 무사히 데뷔를 마치고 나자 이쪽도 파죽지세로 승리를 쌓아 NHK 마일 컵 제패까지 5전 5승, 마찬가지로 무패 G1 등정을 달성했다. NHK 마일 컵 뒤 가을에 대비해 휴양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이쪽도 가을 첫 싸움이었지만, 엘 콘도르 파사도 그 스케일은 그래스 원더에게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 두 마리에는, 둘 다 「외국산마」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외국산마는 국내 마산지 보호의 목적 하에 클래식, 천황상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같은 서러브레드면서도 그들은 그 출신 때문에, 국내에서는 최고의 격식을 자랑하는 레이스에 출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몸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이 두 마리가 모두 시대를 대표하는 명마의 소질이 있다는 말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어째서 강한 말이 최강마를 결정하는 레이스에 나갈 수 없는 거지?」
팬들 사이에서는 그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이 흐름은 클래식, 천황상의 외국산마 출주 개방으로 이어져 간다. 그러나 개방이 결정되기 전인 이 시점에서, 천황상·가을(G1)의 출주 자체가 허락되지 않은 그래스 원더가, 그리고 엘 콘도르 파사가 자신들이 최강임을 증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국내산마이자 천황상·가을(G1) 제패가 확실시되는 사일런스 스즈카를 맞대결에서 격파하는 일뿐이었다.
중거리 왕자에 맞서 구태여 가장 특기인 거리에서 싸움에 도전하는, 밑을 알 수 없는 소질을 가진 두 마리의 외국산 4세마.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사일런스 스즈카와 고마 일선급의 결착이 났다는 이야기가 대세를 이루는 와중, 마이니치 왕관(G2) 이야말로 사실상의 최강마 결정전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 가장 화제가 되었다.
『불안한 왕자』
이러하듯, 청운의 뜻(크나큰 야망)에 불타는 4세마의 도전을 받는 입장이 된 사일런스 스즈카지만, 이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안이 많은 상태였다.
우선, 휴양이 끝나는 것은 다른 두 마리와 같지만 충분한 기간이 있던 두 마리의 4세마에 비해, 타카라즈카 기념을 달린 사일런스 스즈카는 급작스러운 준비로 계획이 다시 세워졌기 때문에, 마체의 마무리 자체가 뭔가 부족한 것이었다. 근량도 57kg의 엘 콘도르 파사, 55kg의 그래스 원더에 비해 사일런스 스즈카는 59kg으로 불리함을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급작스러운 준비의 강한 레이스 직전 조교로 인해 흥분했던 것인지, 구사에서도 너무 빠르게 돌아버려서 다리와 머리를 벽에 부딪치기도 했다.
「달리게 하는 건 좀 무리일까...」
라고, 하시다 조교사가 출주 회피로 생각이 기울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민하는 하시다 조교사를 최종적으로 출주하는 것으로 결단케한 것은 외국산마 두 마리가 도전장을 내민 이상, 받은 사람으로서 도망칠 수 없다는 자긍심이었다. 여기서 출주를 회피한다면 사정이야 어떻든, 세상은
「사일런스 스즈카는 두 마리를 두려워해 도망쳤다」
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령 천황상·가을을 이긴다 하더라도
「사일런스 스즈카보다도 그래스 원더나 엘 콘도르 파사가 더 강해」
라고 듣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싸워서 지는 것도 굴욕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싸우지 않고 패배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납득이 된다. 또, 그것이 사일런스 스즈카에 맞춰 중거리에 구태여 찾아온 도전자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이때 사일런스 스즈카는 준비를 갖추고 있는 도중이라고 해도, 마체는 점점 더 충실해져 드디어 경주마로서 완성기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해 주지 않을까」
하고 사일런스 스즈카를 내보낸 하시다 조교사였지만, 불안감도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마음에 계속 남아있었다.
『3강 대결』
마이니치 왕관(G2)가 개최된 10월 11일, 맑은 가을의 도쿄 경마장에는 13만명의 대관중이 집결했다. 그곳에 있는 누구나가, 역사에 남을 사투를 기대하며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전설의 G2」의 개막인 것이다.
사전에 매스컴에는 「3강 대결」로 부채질 되었지만, 이날의 인기를 보면 1번 인기인 사일런스 스즈카가 단승 140엔으로 투표의 과반수를 얻는 인기가 되었다. 2번 인기 그래스 원더가 370엔, 3번 인기의 엘 콘도르 파사가 530엔이니 「3강」이라 하기에는 한 마리에게 몰려있었다. 무엇보다 4번 인기의 선라이즈 플래그의 단승은 3290엔이었음을 감안하면 세 마리와 4번쨰의 차가 너무나도 크다. 배당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세 마리의 승부인 것은 분명하지만 실제 초점이 「사일런스 스즈카에게 젊은 두 마리가 어떻게 도전할 것인가」라는 것을 팬들은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사일런스 스즈카도 마장에 들어간 직후 마치 자신을 보러 온 팬들에게 응하듯, 사람들로 가득 찬 스탠드쪽으로 다가가 그곳에서 스탠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좀처럼 빠른 걸음으로 옮기지 못하고, 시간이 없어져서 워밍업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을 정도였다. 그 유연한 모습은, 마치 앞으로 싸워야 할 적의 모습 따윈 어디에도 없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레이스가 시작된 이후에도, 사일런스 스즈카의 눈동자 속에 그래스 원더, 엘 콘도르 파사를 포함한 8마리의 라이벌의 모습이 비치는 일은 없었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언제나처럼 스타트와 함께 선두에 서, 다른 말들이 시야에 들어올 틈도 없이 레이스를 이끈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가 예상했던 전개였다. 1000m 통과가 57초 7이라는 랩 타임도, 더이상 사일런스 스즈카에게는 하이페이스조차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더욱 무서운 점은, 이것이 채찍도 뭣도 사용하지 않은 그저 말이 나아가도록 했을 때의 숫자라는 것이다.
그래스 원더, 엘 콘도르 파사의 두 마리는 사일런스 스즈카를 어떻게 이길 것인지 생각하며 싸울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그래스 원더와 마토바 히토시 기수였다. 제 3코너에서 제 4코너에 걸쳐, 사일런스 스즈카가 페이스를 떨어뜨리는 곳에서 단번에 차를 좁혀갔다. 3세 왕자가 「최강」의 지위, 긍지를 걸고 선택한 것은 사일런스 스즈카에게 「이기러 가는」 경마였던 것이다.
『완전결착』
하지만, 하이페이스로 도주해도 결코 멈추지 않는 사일런스 스즈카를 스스로 따라잡으러 가는 것은 고장 난 4세마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다. 넓고 긴 직선에 들어가 드디어 마지막에 몰아쳐오는 말들이 주역인 장면일 터였지만, 사일런스 스즈카의 다리의 빛은 전혀 쇠약해지지 않았다. 타케 유타카 기수가 고삐를 쥐고 있을 뿐인데, 그 차이는 조금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줄어들긴커녕, 빠르게 승부를 걸었던 무리 탓인지 그래스 원더 쪽이 후속으로 밀려나는 기미가 보인다.
이 무렵, 드디어 엘 콘도르 파사도 움직인다. 엘 콘도르 파사와 에비나 마사요시 기수의 작전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 언제나처럼 직선에서 승부하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말하자면 「대패하지 않는 작전」이었다. 보통의 일류마가 상대라면 정공법으로 누를 수 있어도, 적이 사일런스 스즈카여서는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제 4코너 지점에서 이들 사이에는 이미 아무리 말각을 뻗어보아도, 사일런스 스즈카가 멈추지 않는 한 결코 닿을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엘 콘도르 파사는 마군을 빠져나와 사일런스 스즈카로의 추격 태세에 들어갔지만, 사일런스 스즈카에게는 아무리 달려도 닿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어떻게든 차를 좁혔지만 골판 앞에서도 2마신 반이라는 차이는, 앞을 달리는 사일런스 스즈카에게 있어 완전히 안전권인 채로 도주했다는 결착이었다. 엘 콘도르 파사는 2착으로 남았지만, 사일런스 스즈카 상대로 이기러 갔던 그래스 원더는 힘이 다해 마군으로 가라앉아 5착으로 패배했다. 두 마리의 젊은 외국산마의 불패신화는 여기서 끝을 고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일런스 스즈카는, 근래에 드물게 보이는 거물이라 불리던 4세 외국산마인 두 영웅에게 그 그림자조차 밟히지 않고 도주해냈다. 타케 유타카 기수는 G2에서는 이례적으로 위닝런을 해, 일부러 사일런스 스즈카를 바깥쪽 래치에 바짝 붙어 승자를 기리는 13만 관중을 향해 높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것은 승리 포즈인 동시에, 틀림없는 3주 후에의 승리 선언이었다.
※ 일본 경마에서 흔히 말하는 왕자는 王子(=Prince)가 아닌, 王者로 일인자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 사일런스 스즈카, 엘 콘도르 파사, 그래스 원더의 1998 마이니치 왕관은 2022년 JRA에서 시행된 '경마 명승부 열전 Best 10 투표'에서 90,086표 중 7,505표를 받아 7위에 등극했습니다.
※ 모든 열전은 원작자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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