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느티나무의 저편』
─사일런스 스즈카는 큰 느티나무 건너편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일런트 헌터, 그리고 그가 이끌고 온 후속도 차이를 좁히고 있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일런스 스즈카라도 레이스 중 한 번도 숨을 고르지 않고 도주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여기서 숨을 고르고, 다음 가속은 전설을 완결 짓기 위함이다. 누구나가 한순간은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곧바로 알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곳에서 14만 명의 관중이 본 것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사일런스 헌터가, 사일런스 스즈카를 앞질러 가는 것이 아닌가. 사일런스 스즈카가 추월당했다. 지난 1년 간, 절대로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믿을 수 없었던 것은 팬들 뿐만이 아니다. 사일런트 헌터에 기승한 요시다 유타카 기수도 레이스 중에, 게다가 선두에 서려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선은 사일런스 스즈카에게 못박혀 있었다. 후속마의 기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얼어붙은 듯 모든 시선이 사일런스 스즈카에게 집중됐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더이상 달리지 않았다. 사일런트 헌터에게, 그리고 다른 출주마들이 그에게 다가가고, 그리고 추월하려 할 때 그는 있는 힘껏 골이 아닌 코스 바깥쪽, 다른 말들이 오지 않는 안전한 곳으로 코스아웃하려 하고 있었다. 산산히 조각나 부서진 다리를 질질 끌면서.
도쿄 경마장은 비명 뒤, 침묵에 휩싸였다. 얼어붙은 공간 속에서 치열한 공방을 펼치는 직선만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이날 도쿄 경마장을 찾은 14만명 중에 과연 몇 명이 고마 최고의 레이스가 결착이 난 순간을 보았을까.
『싸움 뒤에』
사일런스 스즈카의 다리가 부서지는 순간, 타케 유타카 기수는 꿈의 종말을 깨달았다고 한다.
「어떻게든 씨수마로서 살아 남아주었으면─」
그의 기수로서의 본능은,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억지로 무시한 것은, 그의 인간적인 부분이었다.
기수는 레이스 중 예상하지 못한 긴급 사태이더라도 냉철하게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이때 타케 유타카 기수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뒤에서 오는 말과의 격돌로 인한 사고를 피하기 위해 사일런스 스즈카를 안전한 코스 바깥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일런스 스즈카의 다리는 산산히 부서졌다. 그런 말을 안전하게 코스아웃시키는 것은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 이때 사일런스 스즈카는 서있는 것조차 놀라운 상태였는데, 심지어 그 말을 코스 바깥쪽까지 걷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때의 사일런스 스즈카에 대해 타케 유타카 기수는
「내가 다치지 않도록, 아픈 것을 참고 필사적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겠지」
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타케 유타카 기수는 기수로서의 사명을 다했다. 하지만 수의사의 진단은 그의 바램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좌수근골 분쇄골절, 예후불량」
그리고 사일런스 스즈카는 그날, 골판이 아닌 저승의 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레이스 직후 사고의 원인을 들은 타케 유타카 기수는, 고함을 지르듯 이렇게 말했다.
「원일을 모르겠다는 게 아니야, 아니라고!」
그리고 그날 밤, 어느 곳에서 울면서 와인을 대량으로 들이키는 타케 유타카 기수의 모습이 목격되었다. 또한 주인이 없어진 사일런스 스즈카의 마방에서는, 깔짚 위에 무너져 내린 채 엉망진창이 되어 눈물을 흘리는 하시다 조교사의 모습이 있었다.
『남겨진 자』
천황상·가을(G1)의 한 달 후, 같은 도쿄 경마장에서 재팬 컵(국제 G1)이 개최되었다. 천황상·가을(G1)보다 400m 긴 잔디 2400m에서 개최된, 세계에서 인정받은 국제 G1은 마이니치 왕관 뒤 하시다 조교사가
「만약 천황상을 이긴다면, 거리의 벽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라고 말하며, 출주를 검토하고 있던 레이스였다. 그 후에는 작은 회전 반경의 잔디 코스가 많은 미국에서, 사일런스 스즈카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다. 사일런스 스즈카의 이름은 이미 미국의 호스맨들에게도 알려져 있고, 미국의 경마 전문지가 선택한 세계의 현역 중거리마 10선에 이름을 올려, 미국에서 씨수마로 활동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사일런스 스즈카의 죽음으로 그러한 꿈도, 모든 것은 환상으로 사라졌다.
사일런스 스즈카가 없는 재팬 컵을 완전한 압승으로 제패한 것은, 마이니치 왕관에서 사일런스 스즈카에게 밀려 2착으로 패배했던 엘 콘도르 파사였다. 4세마*의 재팬 컵 제패는, 그 심볼리 루돌프조차 이루지 못한 사상 최초의 위업이다. (이 글은 구 연령 표기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 3세)
재팬 컵 다음 날, 경마 실황으로 유명한 스기모토 키요시 아나운서는 교토역에서 우연히 엘 콘도르 파사에 기승했던 에비나 마사요시 기수와 만났다. 거기서 스기모토 씨는 재팬 컵 제패를 축하하는 말을 건넸는데, 에비나 기수로부터 돌아온 반응은 스기모토 씨가 예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가장 강한 건 우리 말이 아니에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당황하는 스기모토 씨에게, 에비나 기수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 말도, 사일런스 스즈카의 그림자조차 밟지 못했었어요. 어디까지 강한 말이었는지.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기수라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말이 강하다고 확신하는데, 더군다나 이 경우 에비나 기수의 말은 사상 최초로 4세에 재팬 컵을 제패한다는 위업을 달성한 직후의 엘 콘도르 파사다.
엘 콘도르 파사가 사일런스 스즈카에게 패배한 것은 딱 한 번, 그것도 사일런스 스즈카가 가장 특기인 거리에 도전한 패배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만 더 싸운다면, 이긴다」
에비나 기수에게 그렇게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하는, 사일런스 스즈카가 마이니치 왕관에서 보여준 「영원의 차」. 그것은 과연 강함의 차이였던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것의 차이였던 것일까.
그 다음 해, 엘 콘도르 파사는 일본에서 유럽으로의 대장정을 감연히 결행했다. 거기서 남긴 성과는 생클루 대상(프랑스 G1), 푸아상(프랑스 G2) 우승, 그리고 세계의 최고봉·개선문상(프랑스 G1)에서 유럽 최강마 몬쥬와 사투 끝에 2착이라는 위대한 성과였다.
그러나 엘 콘도르 파사 진영이, 상금이 높은 일본 국내의 레이스를 쳐다보지도 않고 유럽으로 떠난 것은 어째서였을까. 유럽 원정을 발표할 때 이유에 대해 질문받은 니노미야 조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국내마와의 승부는 끝났다」
그 엘 콘도르 파사가 그림자조차 밟지 못한 사일런스 스즈카. 만약 사일런스 스즈카가 살아 있었더라면, 엘 콘도르 파사에게는 국내에 한 마리, 쓰러뜨려야 할 적이 남아 있었던 것이 된다. 경마에 「였더라면」, 「만약에」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상해 보면, 경마계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가 형성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일런스 스즈카』
시간은 빨라 사일런스 스즈카가 떠나고 나서, 벌써 2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다. 사일런스 스즈카가 떠난 뒤, 경마계에 사일런스 스즈카의 뒤를 이을 만한 말은 지금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당연하다. 그런 말이 간단히 나타난다면, 사일런스 스즈카가 이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있을 리 없다.
「그런 말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사일런스 스즈카가 후추에서 꽃처럼 졌을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소리 높여 울었던 것이다.
사일런스 스즈카가 떠난 뒤, 사일런스 스즈카의 반형제 라스칼 스즈카가 본격화해 티엠 오페라 오, 나리타 탑 로드 등 전년도의 클래식을 끓어오르게 한 강호들과 호각의 싸움을 펼쳐 천황상·봄 2착, 킷카상 3착이라는 실적을 남겼다. 또한 이나하라 목장에서는 라스칼 스즈카가 활약하고 있는 시기에 사일런스 스즈카의 이부남매인 와키아 오브 스즈카가 사일런스 스즈카와 같이 선데이 사일런스를 아버지로 둔 산구를 출산했고, 그 스즈카 드림은 케이세이배(G3)를 이기고, 도쿄 우준(일본 더비) 출주를 해냈다(15착).
하지만, 그들이 G1 전선에서 활약했다고 해서 그 존재가 사일런스 스즈카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이것은 그들이 더 큰 레이스를 이겼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마도 아닐 것이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최강이라는 것」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것이 아니라, 「사일런스 스즈카라는 것」에 의해 사람들에 마음에 남았으니 혈통이 가까운 다른 말이 활약한다고 해서, 그 대신 인정받을 리도 없었던 것이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말 한 마리 한 마리의 개성이 희미해졌다는 현대 경마에 나타난,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개성이었다. 다른 말들은 사일런스 스즈카를 강함으로는 넘어설 수는 있어도, 인상으로 넘어서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인상이라는 것은 실제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미래에 사일런스 스즈카의 현역 시절을 모르는 새로운 팬이,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일런스 스즈카? 확실히 중거리에서는 강했을지도 모르지만, 마일에서도 클래식 디스턴스에서도 제대로 이기지 못했잖아. 게다가 잘하는 중거리에서도 약한 상대 뿐이고 G1은 하나밖에 이기지 못했잖아」
그런 사일런스 스즈카의 평가에 대해, 어쩌면 우리는 사일런스 스즈카의 현역 시절을 아는 사람으로서 반론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엘 콘도르 파사나 그래스 원더와의 힘의 관계에서 사일런스 스즈카의 강함을 설명하려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킨코상의 비디오를 봐」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사일런스 스즈카의 모든 것을 전달할 수는 없고, 상대를 완전히 납득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사일런스 스즈카의 평가도 틀림없이 사일런스 스즈카의 객관적인 면을 올바르게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록은 후세의 사람들과 공유하기 쉽지만, 기억을 후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에 와서 사일런스 스즈카가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고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사일런스 스즈카는 1998년 일본 경마에 돌연 나타난, 무엇보다도 덧없는 환상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은, 운 좋게도 같은 환상을 볼 수 있었을 뿐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하면 아무리 자료나 영상을 들고 나와도 그 기억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설복시킬 수 없는 것도 당연한 이치이다.
어쩌면, 사일런스 스즈카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우리가 공통적으로 본, 환상 같은 말이었던 것은 아닐까. 다른 말들과는 너무나 다른 차원을 달린 그의 달리기는 현실이라기엔 너무 빠르고, 그리고 그 존재는 너무나도 덧없이 우리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우리에게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기억을 남기고.
사일런스 스즈카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강렬한 기억을 심어준, 영원한 환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남긴 기억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그가 남긴 기록은 미래의 말에게 깨져 사라지더라도, 그가 남긴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모든 열전은 원작자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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