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4월 24일생. 2007년 7월 3일 사망. 숫말. 흑갈색털. 카타야마 센타로 목장(미츠이시) 산.
부 : 보이지 보이. 모 : 타니노 벤처 (모부 : 벤처).
도몬 카즈미 구사 (릿토).
통산 성적 : 22전 10승 (구 3-5세 때).
주요 승리 : 재팬 컵(G1), 타카라즈카 기념(G1), 마이니치 왕관(G2), 산케이 오사카배(G2), 케이한배(G3), 교토신문배(중상), NHK배(중상)
『후추가 얼어붙은 날』
1984년 11월 25일─이 날짜는, 일본 경마의 역사에 남을 하루로서, 그 기록에 깊게 새겨져 있다. 해외로부터 초대 받은 강호들을 도쿄 잔디 2400m 코스에서 맞이한, 일본을 대표하는 강호들이 맞선다는 취지로 시작된 재팬 컵(G1)에서, 제 4회만에 처음으로 일본마가 외국 초대마를 꺾고 우승한 것이다.
재팬 컵은 「일본 경마를 세계에 통하는 레벨로!」라는 목표로, 우선 세계의 일류마를 일본에 초대해, 국내의 일류마에게 세계의 일류마와 싸울 기회를 만들자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창설 초기 당시에는
「2400m에서는, 만에 하나라도 일본마에게 승산은 없다」
라며, 재팬 컵은 2000m전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꽤 강하게 주장 되었지만, 최종적으로는 2400m, 그것도 일본 더비와 완전히 같은 도쿄 2400m 코스로 개최되는 것이 결정되었다. 그 배후에는, 「클래식 디스턴스」라고 불리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가치 있는 거리라는 2400m에서 세계에 통하는 말을 만들고 싶다는, 일본 경마 공통의 강한 바람이 있었다.
이러한 웅대한 계획 아래 창설된 재팬 컵이었지만, 최초의 결과는 무참했다. 기념할만한 제 1회 재팬 컵은, 레이스 자체의 인지도가 낮은 것에 더해 개최자가 서투른 것도 있어, 유럽에서의 참가는 없었다. 그래서 중심이 된 것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온 초대마였지만, 그들도 개최자가 기대한 일류마는 전혀 참가하지 않았고, 일본에서 말하는 준 오픈 클래스 정도의 이류마가 대부분이었다. 그에 반해 그들에게 맞선 일본마는 호요 보이, 몬테 프린스 등 당대를 대표하는 명마가 모여, 일본 경마 관계계자들이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면 이기겠지」
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레이스가 끝나자, 미국에서는 이류 암말에 불과했던 메어지 도츠의 완승으로 끝났다. 당시의 베스트 멤버를 갖췄을 터였던 일본마들은 모두 실패했고, 최선착은 골드 스펜서의 5착이라는 악몽 같은 결과가 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세계의 레벨을 안다」라는 개최자의 목적은 훌륭하게 달성된 셈이지만, 그렇다 해도 결과는 너무 심했다. 일본 경마의 관계자들은, 제 1회 재팬 컵을 계기로 누구나 「세계」와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다.
그 후에도 재팬 컵은 횟수를 쌓아나갔지만, 역시나 일본마는 좀처럼 이기지 못했다. 제 2회는 히카리 듀얼, 앰버 샤다이라는 이것 또한 당대의 에이스 격이, 역시 외국마가 힘들이는 일 없이 무너졌다. 제 3회에서는, 천황상마 쿄에이 프로미스가 레이스 중 고장을 일으키며 격주해, 경주생명을 대가로 일본마 최초의 연대를 달성했지만, 그럼에도 우승에는 손이 닿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일본마로 재팬 컵을 이기자!」
「후추에 일장기를 내걸자!」
라는 목표가 일본 경마의 표어, 비원이 되어, 경마 관계자들은 재팬 컵에 출주할 수 있는 말을 만들어, 육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4회의 도전 만에 마침내 그 비원이 달성 됐을 때, 도쿄경마장을 지배한 것은, 장내를 둘러싼 흥분도 아닐 뿐더러 터질듯한 대함성도 아니었다. 일본마가 외국마를 뒤쫓게 만들고 선두에서 골 인한다... 일본 경마가 꿈꾸던 비원이 현실이 되었을 때, 후추는 한순간의 정적, 침묵에 휩싸였다고 한다.
일본마로서는 처음으로 재팬 컵을 우승해, 후추에 일장기를 내건 것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검은 빛을 내는 듯한 흑갈색털의 마체를 가지고, 그때까지 타카라즈카 기념 등 수많은 중거리 중상을 이겨온 카츠라기 에이스였다. 카츠라기 에이스의 전적은 이 날의 승리로 10승째, 중상 제패는 7번째로, 본래라면 우승해도 아무런 이상함이 없는 일류의 실적마였다. 그럼에도, 그의 승리가 이러한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 것은, 과연 어째서였을까.
『평범한 말로서』
카츠라기 에이스는, 1980년 4월 24일, 미츠이시의 카타야마 센타로 목장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타니노 벤처는, 「타니노」의 관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원래는 컨트리 목장에서 태어난 암말이었지만, 그 후 카타야마 목장으로 이동하게 되어, 다섯째인 카츠라기 에이스는, 타니노 벤처가 카타야마 목장에서 낳은 첫 산구이다.
타니노 벤처의 혈동표만 보면, 당시 인기 종마였던 벤처의 딸이자, 더욱이 교토 4세 특별 우승, 사츠키상 4착 등의 실적을 가진 타니노 모스보로를 비롯해, 4마리의 형제 모두 중앙에서 승리해 나갔다는 혈통적 배경이 있었다. 타니노 벤처 자신의 경주 성적도, 3전 1승이라는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 태어난 서러브레드 중 중앙에서 데뷔할 수 있는 것은 일부라는 것을 생각하면, 비관할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번식에 들어간 후 그녀의 산구 성적이었다.
그럭저럭의 기대와 함께 번식에 들어간 타니노 벤처였지만, 그녀의 컨트리 목장에서의 산구 성적은, 매우 좋지 않았다.
카츠라기 에이스의 4마리의 형제 중, 경마장에서 데뷔할 수 있었던 것은 2마리 뿐. 더구나, 승리한 게 그 중 한 마리뿐이라는 것은, 혈통적인 묘미 이전의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타니노 벤처는 보이지 보이와 교배했다. 보이지 보이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통산 28전 9승이라는 전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주된 승리는 슈토크로즈S, 쟉 스콧S라는 것으로, 일본인도 알고 있는 큰 레이스에서의 실적은, 여름의 유럽 마일 왕 결정전의 하나인 물랑 드 롱샹상에서 해바타트의 2착이 된 적이 있을 정도이다. 보이지 보이의 객관적인 평가는, 2000m 이하의 거리에서 그럭저럭 달리는 이류마... 것이 정론이었다. 종마로서도, 처음 제공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빅토리아 더비마 갈레나 보이를 배출한 것이 고작이고, 일본에 수입이 결정됐을 때에도 화제에 오르는 일조차 거의 없었다. 수입 후 2년 만에 사망해버린 보이지 보이는, 결국 카츠라기 에이스 이외에는, 이렇다 할 실적마를 일본에 남기지 못했다.
타니노 벤처가 카타야마 목장에 온 것은, 그녀를 포기한 컨트리 목장이 그녀를 경매에 내놓았을 때, 우연히 타니노 벤처에게 시선이 멈춘 카타야마 씨가 낙찰 받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구입 가격인 350만엔이라는 가격은, 당시의 번식 암말의 시세로서도 싼 것이었고, 카타야마 목장도 그녀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하물며, 그녀가 경매 때에 우연히 수태하고 있던 무명 종마의 새끼에게, 기대한 요소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팔다 남은 것』
태어난 직후의 카츠라기 에이스는, 「이류혈통」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태어난 직후의 그에게 특별히 주목하려는 경마 관계자는 없었고, 태어난 지 얼마 지나, 그는 경마계에서 정말 어디에나 있는 흔한 말 중 한 마리에 불과했다.
그 후, 마체의 성장에 따라 조금은 장래성이 있다, 라고 생각한 것인지, 2세마 중에서도 어느 정도 선발된 말만 상장이 허가되는 6월 특별 시장에 허가가 난 카츠라기 에이스였지만, 중요한 경매 참가자들에게 소질을 간파받지 못해, 팔리지 않아 다시 주인의 손에 돌아가게 되었다.
8월이 되어, 이번에는 히다카의 정기 경매 시장에 나간 카츠라기 에이스였지만, 이번에도 최초 금액이었던 600만엔에서는 입찰받지 못하고, 500만엔으로 떨어졌을 때 겨우 입찰되어, 몇 명의 경합 결과, 710만엔에 낙찰되었다. 당시에 경주마 시세를 생각하면, 싸지는 않지만 비싸지도 않은 정도의 가격이다.
이때 그를 낙찰받은 것은, 후에 카츠라기 에이스의 마주가 되는 노데 이치조 씨에게 말 선택을 위임받은 말 상인이었다.
이때 말 상인에게 노데 씨가 내린 요청은,
「1년에 1승은 하는, 5세 말까지 달릴 수 있는 말. 예산은 1000만엔까지.」
라는 것이었다. 카츠라기 에이스는, 그런 요망을 충족하는 말로서 선택받았다. 그것과 동시에, 그 시점에서 그는, 그 이상의 무언가는 전혀 아니었다.
『음지에서의 데뷔』
카츠라기 에이스는, 이윽고 릿토의 도몬 카즈미 구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도몬 조교사도 카츠라기 에이스가 기대마였기 때문에 맡은 것이 아니라, 마주 주변의 인간관계로 맡았다는 것이 정직한 것 같다. 도몬 조교사에게 있어, 구사에 들어온 카츠라기 에이스는, 「어디가 좋은지 모르겠다」 라는 평범한 말이었다.
구사에 들어갔을 무렵의 카츠라기 에이스는, 허리가 약해 제대로 조교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조교할 수 있게 된 후에도, 그다지 강하게 따르지 않아, 좀처럼 몸(지방 등)이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병주마로 써보면, 어떤 말과 짝지어도, 반드시 늦어버리고 만다. 병주마의 상대를 하면, 이래서는 병주마로 쓰는 의미가 없다. 도몬 조교사나, 조교 상태를 보러 온 노데 씨들은,
「역시 경매에서 산 말은 안되겠네」
「쓰레기 말을 속아서 사버렸다」
등, 제멋대로인 말을 하며 한탄했다. 9월의 신마전에 내보내게 된 것도,
「이 이상 기다려도 좋아질 가망이 없으니까, 우선 레이스에 써보고 상황을 보자」
라는, 더할 나위 없이 될대로 되라는 이유였다.
구사 관계자조차 이런 상태이니, 일반 팬들의 지지란 있을 리가 없다. 카츠라기 에이스의 데뷔는 한신 잔디 1200m의 신마전이었지만, 단승 인기는 14마리 중 6번 인기에 불과했다.
원본글 : https://retsud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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