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지 않는 평가』
이렇게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구세대 강호들을 격파한 카츠라기 에이스였지만, 이 시점에서 그가 명마로서 평가 받았는가, 고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당시 팬들의 인식에서는, 카츠라기 에이스라 하면, 전년의 클래식에서 미스터 시비에게 전혀 미치지 못했던 말, 이라는 것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카츠라기 에이스가 클래식 실전에서 미스터 시비에게 계속 졌던 것은 사실이다. 교토신문배에서 이겼다고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트라이얼 레이스에서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해 봄, 그들 세대의 왕자인 미스터 시비는, 다리 불안으로 휴양중이었다. 마침 이 시기에 본격화 되어 경마계의 정점을 탈취한 듯 보이는 카츠라기 에이스였지만, 미스터 시비 부재중에 아무리 승리를 쌓아도, 그로 인해 미스터 시비를 뛰어넘는 평가를 손에 넣을 수 없었다. 당시의 카츠라기 에이스는 어디까지나 「미스터 시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취급에 항의하듯이, 타카라즈카 기념마 카츠라기 에이스는, 그 후 타카마츠노미야배(G2)에도 출주했다.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중거리왕이 된 후, 바로 타카라즈카 기념보다 격이 낮은 G2의 타카마츠노미야배에 출주한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로테이션이라 말할 수 밖에 없지만, 어쩌면 계속 승리하는 것으로 조금이라도 평가를 미스터 시비와 가깝게 끌어올리려 했던 것은 아닐까.
다만, 만약 도몬 조교사의 의도가 그렇다고 한다면, 타카마츠노미야배 출주는 실패로 끝났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당초, 이 레이스에는 무패로 2관을 달성한 직후의 4세 최강마 • 심볼리 루돌프의 참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심볼리 루돌프는 최종적으로는 이 레이스를 회피해, 상대는 예측대로 카츠라기 에이스보다 격이 낮은 말들 뿐이 되었다. 그런데, 타카마츠노미야배 당일 마장 상태는, 카츠라기 에이스가 가장 서투른 중마장이 되어버려, 설마의 5착으로 패퇴해 버린 것이다. 참고로 이 날 승리마는 쿄에이 레어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이날의 레이스는, 「척안의 경주마가 이긴 중상」으로 사람들의 기억 한켠에 새겨져있다.
그건 그렇고, 모처럼 타카라즈카 기념을 이겼음에도, 그 직후에 타카마츠노미야배에서 격이 낮은 상대에게 간단하게 패배해버린 것으로, 카츠라기 에이스의 평가는 또다시 내려가게 되었다. 타카마츠노미야배 후에 여름 휴양을 떠난 카츠라기 에이스는, 가을 초전의 마이니치 왕관(G2)를 향해 조정받게 되었다.
『그들을 위한 개혁』
하지만, 주위의 평가가 어찌되었든, 카츠라기 에이스 진영의 가을에 대한 기대는, 비상식적으로 컸다. 그 기대의 배경에는, 그 해부터 실시된 큰 폭의 방송 체계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 1984년부터는, 그레이드제 도입을 계기로 천황상 가을의 거리가 2000m로 단축되어, 중거리왕 결정전으로 재탄생한 것은, 카츠라기 에이스 진영에게 있어 복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전통적인 큰 레이스의 조건을 크게 바꾼 이 거리 단축에는, 당시의 경마계에서 반발도 꽤나 커, 일부는
「미스터 시비가 이기게 하기 위한 변경인 것 아닌가」
라고 하기도 했다. 미스터 시비는, 삼관은 쟁취했지만, 혈통적으로 결코 장거리 적성은 아니다. 그래서, 천황상 가을의 거리 변경은, 희대의 아이돌 호스인 미스터 시비를 이기게 하기 위해, 중앙경마회가 꾸민 것 아닌가, 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거리 단축을 반긴 것은, 미스터 시비 진영보다 오히려 카츠라기 에이스 진영이었다. 그들의 의견은,
「천황상 가을의 거리 단축은, 우리들을 위한 개혁 같은 것」
이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3000m의 킷카상도 이긴 미스터 시비 진영보다, 2000m 전후에 좋은 성적이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는 카츠라기 에이스 쪽이, 이 개혁은 더 고마웠을 것이다. 봄에 천황상 봄을 고민없이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도, 무리하지 않아도 가을까지 기다리면 큰 목표로서 적정 거리가 된 천황상 가을이 있다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마이니치 왕관은 천황상 가을 실전으로 이어지지 않는 스텝 레이스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건 1800m의 마이니치 왕관과 3200m의 천황상 가을 사이에, 너무나 큰 조건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천황상 가을이 2000m가 된 이상, 마이니치 왕관의 위상이 크게 변하는 것은 필연적이고, 카츠라기 에이스를 거기서부터 시동을 걸게 한 도몬 조교사, 니시우라 기수 등 카츠라기 에이스 관계자들의 천황상 가을을 향한 꿈은, 부풀어갔다.
그러나, 마이니치 왕관의 단승 배당은, 카츠라기 에이스 진영의 생각과는 대조적이었다. 1800m라는 거리라면 카츠라기 에이스는 발군의 거리 적성을 갖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레이스에서 주역이 된 것은, 카츠라기 에이스가 아니었던 것이다.
『돌아온 삼관마』
예로부터 천황상 가을(G1)의 스텝 레이스로 개최되어온 전통의 레이스 • 마이니치 왕관에서의 팬들의 주목은, 복귀를 마친 삼관마 미스터 시비에게 모여있었다. 미스터 시비에게 있어 킷카상 이래 오랜만의 실전이 된다.
4세 때 「클래식 삼관」 이라는 서러브레드 명예의 최고봉에 달했던 미스터 시비였지만, 5세가 되고 나서의 경주 생활은 순풍만범하지 않았다. 아리마 기념을 회피하고 고마 전선을 준비한 미스터 시비는, 원래라면 천황상 봄부터 타카라즈카 기념이라는 중장거리 노선의 왕도를 걸어야할 지위에 있었다. 그런데, 클래식 삼관을 모두 전대미문의 레이스로 끝내버린 것의 반동이 온 것인지, 미스터 시비의 5세 봄은, 각부 불안과의 싸움에만 낭비될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결국 봄을 전부 쉬고, 마이니치 왕관에 출주해 왔을 때는, 킷카상의 영광으로부터 실로 약 11개월이 경과해 있었다.
미스터 시비는, 원래 팬들에게 인기가 높은 말이었지만, 실제로 돈을 걸게 되면, 이야기는 다르다. 팬들도 이렇게 긴 공백기간이 있으면, 삼관을 제압한 스퍼트가 돌아올 것인지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의 교토신문배에서 완벽하게 날아간 전과도 있어, 직전 조교에서도 그 달리기는 본래의 모습이라 하기에는 걸맞지 않았다. 이 날, 미스터 시비는, 마침내 데뷔 이래 9전에 걸쳐 지켜왔던 1번 인기의 자리를 다른 말에게 내주게 되었다.
하지만, 미스터 시비에게서 1번 인기를 빼앗은 것은, 미스터 시비 부재중 중거리왕의 지위를 쌓은 카츠라기 에이스가 아니라, 「공영 사관마」 산 오이였다. 4세 때의 산 오이는, 중앙경마가 아닌 공영 미나미칸토 경마에 소속되어, 하네다배, 도쿄 더비, 도쿄왕관상이라는 「미나미칸토 삼관」 전부 우승, 게다가 지방경마의 제전(祭典)이자, 중앙경마로 말하자면 아리마 기념 같은 지위에 해당하는 도쿄대상전도 제압해 「사관마」의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산 오이는, 이 「사관마」의 칭호를 선물로 중앙에 들어가기로 결정되었지만, 오오이 경마장에서는 그의 장행회*가 열려,
「시비 따위, 해치워버려!」
라고 말하는 공영 팬들의 뜨거운 환호로 배웅받으며 중앙에 입성했다.
카츠라기 에이스의 단승은 480엔으로, 「두 마리의 삼관마」에 이어 3번 인기에 그쳤다. 이겨도 이겨도 평가가 오르지 않고, 그런 주제에 패배하면 금세 평가가 떨어진다. 카츠라기 에이스는, 마치 주역이 될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것만 같았다.
*장행회 (壮行会) = 큰 뜻을 갖고 떠나는 사람을 송별하기 위한 모임
미나미칸토 = 남관동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는데, 그냥 미나미칸토로 하기로 했습니다
도쿄도 도쿄로 쓰고 교토도 교토로 쓰는데 뭐..
그리고 도몬 조교사는 외래어 표기법 한 거 아닙니다 그냥 도몬임
제가 워낙 직역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말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최대한 의역을 하고는 있는데 어렵네요
그리고 오타 잦을 수 있습니다 속도를 내려고 원문 보면서 치고 있어서..
원본글 : https://retsud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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