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기수』
와다 씨와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대립은, 표면적으로는 시리우스 심볼리의 기수 교체 요구로 보였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 있던 것이 두 사람의 잠정적인 대립이었던 것은, 두 사람의 의논과 타협을 지극히 곤란하게 하고 있었다.
와다 씨가 교체하길 원했던 오카베 기수는, 그 해 심볼리 목장, 그리고 와다 씨의 최고 걸작인 심볼리 루돌프에 기승해 무패로 삼관을 달성하고, 또한 그 후에 4세에 아리마 기념(G1)도 승리했다. 와다 씨는 선행에서 빠져나가는 경마를 특기로, 말에게 경마를 가르치면서 성장해 나가는 오카베 기수의 수완을 지극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와다 씨는, 스타트가 서툰 시리우스 심볼리에게는 오카베 기수의 손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오카베 기수는 그야말로 절호조로, 큰 레이스에서 연이어 작전, 때로는 기책이라 할 수 있는 기승으로 결과를 계속해서 내고 있어, 일부에서는
「오카베는 요술이라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라고 말할 정도였다.
또한, 와다 씨의 머릿속에서는 큰 경주를 바라보고 기수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마주의 당연한 권리라는 유럽과 미국식의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 경마 중에서도 일찍이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던 와다 씨는 해외, 특히 유럽 경마 사정에 해박했다. 큰 레이스에서, 기수를 보다 더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톱 기수로 교체하는 것은 유럽에서는 당연한 일이고, 지금이 바로 기수로서의 절정기이자, 마주인 자신도 누구보다 신뢰하고 있는 오카베 기수를 시리우스 심볼리에 태우는 것은, 와다 씨로서는 아무런 지장도 문제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니혼야나기 조교사는 와다 씨의 기수 교체 요구에 대해, 전혀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의향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제자인 카토 기수의 기승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또한, 니혼야나기 조교사는 카토 기수의 기량이 와다 씨가 말한 것처럼 오카베 기수보다 한 수도 두 수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확실히 두 기수의 성적을 비교해보면, 승리 수는 오카베 기수 쪽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카토 기수의 승률도 매우 높아, 당시 우수 기수상 승률 부문(전신인 기승 기술상 포함)의 베스트 5에 들어간 횟수는, 오카베 기수가 1회 뿐이었던 것에 비해, 카토 기수는 1975년(쇼와 50년)의 데뷔 이래 10년간 이미 3회였다. 카토 기수는 명문 구사의 주전 기수로서, 기승마의 질이 꽤나 혜택을 받았던 것을 감안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그가 현실에 남긴 숫자는 훌륭한 것이고,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카토 기수는 뛰어난 승마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년 (1984년)의 기승 횟수는 81회 뿐이었다 (참고로 오카베 기수는 544회). 그것은 소속된 니혼야나기 구사의 말의 기승을 최우선하기 위해 외부의 의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 심볼리의 조교로 매일 상처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는 제자에 대한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마은은, 와다 씨의 밥법에 대한 불신감과 합쳐져 기수 교체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기수의 교체에 대한 저항은 적어졌지만, 당시에는 구사에 말을 맡긴 이상, 그곳의 주전 기수가 타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야말로 상식이었다. 자신의 구사의 말에는 자신의 제자를 태운다, 라는 것은 미호노 부르봉을 키운 고 토야마 타메오 조교사가 유명하지만, 이 때에는 그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니혼야나기 조교사도 토야마 조교사와 같은 타입의 조교사였다는 것 뿐이었다.
『붕괴의 서곡』
와다 씨와 니혼야나시 조교사. 각각 경마에 관해서 강한 신념을 갖고 있고, 그때까지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것만으로 큰 실적을 남겨 온 두 사람의 대립은, 시간이 지나며 그 균열을 더욱 깊게 만들어, 복구를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다음 경주의 시리우스 심볼리는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의향대로, 안장 위는 카토 기수인 채로 격이 높은 경주에 도전해 당시 오픈전이었던 후추 3세 스테이크스로 향했다. 지금까지 실패가 계속됐던 카토 기수였지만, 이 때는 늦은 출발의 불리함도 없고, 실수도 없는 기승으로 겨우 2승째를 올린다. ...하지만, 이 승리는 모든 당사자에게 있어,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와다 씨의 불신감은 이미 카토 기수를 넘어, 니혼야나기 조교사에게 향하고 있었다.
또한, 레이스에 나가면 결과를 내는 시리우스 심볼리였지만, 각부 불안도 종종 발병하게 되었다.
당시 심볼리 목장은, 사실상의 「외부 구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었고, 레이스를 위한 조정을 구사가 아닌 목장에서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 미호나 릿토 트레센이 아닌 외부에서 훈련을 하는 것) 21세기에 샤다이 그룹이 패권을 쥐는 원동력 중 하나라고도 불리는 방법론을, 와다 씨는 이 당시부터 실전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본래라면 목장과 구사의 연계가 중요해야 하는 이 방법론이, 시리우스 심볼리에 대해서는 반대가 되었다. 와다 씨와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상호불신에 의해, 시리우스 심볼리의 최신 상태를 파악해 조정에 반영하지 못해 그 상태가 더욱 불신을 부른다. 정신을 차려보니, 「비밀병기」 「실력은 세대에서도 1, 2위를 다툰다」고도 불린 시리우스 심볼리가, 후추 3세 스테이크스 후에는 레이스에 나가는 일도 없이, 시간만이 흘러갈 뿐이었다. 처음에는 동세대의 3세 왕자결정전인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G1)에도 출주할 예정이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출주의 기미조차 없이, 해가 저물어갔다.
새해가 밝아도,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아질 기미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악화될 뿐이었다. 시리우스 심볼리에게 클래식 전선에서 오카베 기수로 교체하고 싶은 와다 씨와, 카토 기수를 계속 기승시키고 싶은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사이의 간극은 메워지지 않고, 마침내
「그렇게나 불만이면, 다른 구사로 옮겨버리면 돼」
라는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말에, 와다 씨가 정말로 다른 구사로 시리우스 심볼리를 옮겨버리고 마는 형태로 파국이 찾아왔다.
시리우스 심볼리는, 3월 30일의 와카바상(OP)를 목표로 조정이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의 JRA에서는 출주하는 레이스의 10일 전까지는 구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기에, 시리우스 심볼리도 레이스의 딱 10일 전인 3월 20일에 목장에서 구사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같은 날 니혼야나기 구사의 소속마로서 미호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간 시리우스 심볼리였지만, 그 후 친동생이 심볼리 목장의 간부를 맡고 있던 하타케야마 시게노리 구사로 이동절차를 밟았다. 분명 와다 씨와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사이에서는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니혼야나기 조교사는 그 날도 냉정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타케야마 조교사 족이 새파랗게 된 모습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와다 씨와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관계를 어떻게든 중재하기 위해, 그 날도 여러 조교사들이 마지막까지 설득을 시도해봤지만 허사로 끝나버렸다.
이와 같이, 시리우스 심볼리의 안장 위를 둘러싼 와다 씨와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대립은, 경마계에 격진(激震)을 초래하는 구사 이동이라는 형태로, 하나의 결말을 맞이했다.
『승자 없는 투쟁』
와다 씨와 니혼야나기 조교사의 대립은, 시리우스 심볼리의 구사 이동으로 수습되는 듯이 보였다. 시리우스 심볼리는 하타케야마 구사 소속마로서, 4세 초전이 되는 와카바상(OP)에는 와다 오너의 의향대로 오카베 기수로 향하고, 그대로 클래식 전선으로 향한다. 구사 이동을 둘러싼 소동이 경마계에 불러온 충격은 컸고, 두 사람의 그 이전의 갈등도 알려져 있었기에, 어중간한 상태가 이어져 말의 장래에 악영향을 주는 사태를 생각해보면, 이런 형태여도 말의 주변이 일단락된다면 차라리 그 편이 낫다. 이러한 목소리는 경마계에도 있었고, 이 소동으로 가장 손해를 보는 형태가 된 니혼야나기 조교사도, 아마도 이런 미래를 예측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동은 예상 못한 곳에서 재연되어, 사태는 또 다른 수렁으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구무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 중 하나인 릿토 노조가,
「이번 구사 이동으로 조합원에 대한 불이익 행위와 조합원 간의 불필요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태가 생겼다」
라고, 조교사회에게 협의를 제의해 온 것이다.
일본의 경주마 상금체계는, 마주의 몫은 80%이고, 남은 10%가 조교사, 5%가 기수, 구무원에게 각각 「진상금(進上金)」으로서 분배되는 시스템으로 되어있다. 그렇게 되면, 구무원의 수입은, 이길 수 있는 말을 담당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큰 격차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에서는, 마주와 조교사의 대립에 의해, 구무원의 의향과는 무관계한 곳에서 구사 이동이 결정되어 버렸다. 이것이 전례가 되어 일반화 된다면, 구무원은 참을 수 없다. ...무엇보다, 니혼야나기 구사에서 시리우스 심볼리의 담당 구무원은, 니혼야나기 조교사가 머리를 숙여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네요」
라고 납득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태는 이미 그런 영역을 초월한 정치 문제로 발전해, 더 이상 일개 마주와 일개 조교사, 혹은 일개 구사의 대립이라는 문제에 그치지 않게 되었다. 계절은 마침 「춘계 임금 인상 투쟁」의 시기이기도 해서, 예정되었던 구무원 조합과 조교사회의 노사간 협의에 갑자기 큰 난제가 던져진 형태다.
게다가, 구사 이동 소동과 그 후의 전개의 확산에는, 시리우스 심볼리의 인수자가 된 하타케야마 조교사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심볼리 목장과는 가까운 관계였던 하타케야마 조교사였지만, 이번 구사 이동에 관해서는 완전히 말려든 입장이다. 성격적으로 온후한 타입인 만큼, 사태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리고 주위의 반응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의 고뇌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사태가 또다시 크게 움직인 것은, 28일이었다. 표면적으로는 하타케야마 조교사의 중개에 의해, 와다 씨와 니혼야나기 조교사가 다시 의논해 시리우스 심볼리는 니혼야나기 구사에 복귀하게 된 것이다. 대립의 원점이었던 기수에 관해서는, 와카바상에서는 오카베 기수, 사츠키상에서는 카토 기수가 기승하는 것으로, 수습한다...라는 내용이 보도되고 있다. 와다 씨에게 있어서는 본래 받아들이기 힘든 안이었던 만큼, 구무원 조합이 심볼리 목장의 말을 전면적 수용 거부라는 카드를 내보인 것은 아닌가 라던가, 춘계 임금 인상 투쟁과 관련해 전면적 파업에 돌입했을 경우의 영향을 조교사회가 두려워해, 개입한 것은 아닌가 하는 등의 여러 억측도 나왔지만, 어찌되었건 시리우스 심볼리는 구사 이동 후 불과 약 1주일 만에 니혼야나기 구사로 복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조정안의 성립은, 사태의 본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었음이 확실했다. 와다 씨는 신뢰관계가 깨져버린 스태프에게 말을 강제로 돌려줘야하는 최악의 결과가 되었고, 니혼야나기 조교사나 카토 기수 쪽도 말이 나감으로서 겨우 마음을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같은 말이 돌아오게 되었다.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의 추이는, 와다 씨 측과 니혼야나기 조교사 측 모두에게 불행한 것이 되었다.
참고로, 시리우스 심볼리가 니혼야나기 수가에서 하타케야마 구사로 이동한 것은 불과 일주일이었지만, 니혼야나기 조교사는 하타케야마 조교사를 소동에 말려들게 한 결과를 크게 뉘우치고, 그 후 시리우스 심볼리 조교사 분의 진상금 절반을 그에게 계속 보냈다고 한다.
와카바상에서의 시리우스 심볼리는, 형식적으로는 하타케야마 조교사이면서 실질적으로는 와다 씨로부터 의뢰를 받은 오카베 기수가 고삐를 잡았다. 엄청난 중압이 걸리는 기승이었지만, 오카베 기수는 기대에 부응해 늦은 출발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좋은 위치에 붙어, 시리우스 심볼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그 승리 방식은, 와다 씨가 시리우스 심볼리에게 바랬던 왕자의 승리 방법 그 자체였다. 와카바상의 레이스 후 와다 씨의 코멘트는, 매체에 따라 어느 정도 뉘앙스가 다르지만, 다음 날 스포츠지에서도
「역시나 오카베 군의 기승 방법은 다르네」
라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카토 기수에 대한 불만이 결코 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본글 : https://retsud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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