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기에는 아직 먼 화해』
「더비마 시리우스 심볼리」의 탄생은, 와다 씨와 심볼리 목장에게 있어 전년도의 심볼리 루돌프에 이은 2년 연속의 일본 더비(G1) 제패가 되었다.와다 씨의 생산마의 더비 제패는, 다른 마주에게 판 사쿠라 쇼리도 포함해 통산 3마리째라는 쾌거였다.
하지만, 그 빛나는 영광을 기리기 위한 표창식에 와다 씨의 모습은 없었다. 와다 씨는 감기에 걸려 그 주에는 39도의 열에 시달리고 있었고, 더비 당일도 도쿄 경마장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가족에게 대리를 부탁한 것이다. TV로 관전하고 있었다는 와다 씨는, 카토 기수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지만, 후에 카토 기수에의 기승에 대해,
「저런 화려한 승리 포즈를 해서, 말이 고장나면 어떡해...」
라 불만을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완벽주의자로 자신에게도 엄하지만 타인에게도 엄한 와다 씨에게 있어, 결과의 성공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카토 기수의 기승에도 아직까지 불완전한 점이 있다고 보였다. 무엇보다도, 골 라인을 지나 감속할 때 기수의 승리 포즈는 이미 가혹한 레이스를 마친 말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여기서 밸런스를 무너뜨린 탓에, 골절 등의 고장을 일으킨 선례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더비 제패란 수많은 호스맨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중에서는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카토 기수가 그 성과를 손에 넣음으로써, 이번에야말로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은 완전히 끝나는 게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품고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른 형태도 종결되게 되었다. 와다 씨는, 일본 더비(G1)을 마친 시리우스 심볼리를 고마전선에 군림하고 있던 절대황제 심볼리 루돌프와 함께, 유럽에 원정을 떠나겠다 발표한 것이다.
『해외로의 도망』
당시 고마전선에서 일본 경마 사상 최강의 명마로 가는 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은, 심볼리 목장의 최고 걸작인 절대황제 심볼리 루돌프였다. 천황상 · 봄(G1)에서 세 번째('84 재팬 컵, '94 아리마 기념)로 미스터 시비를 분쇄하고 G1 5승째를 거둔 심볼리 루돌프는, 그 후에도 타카라즈카 기념(G1)을 목표로 조정중이었다. 일본 경마계 사상 최강의 명마로서 명성을 거의 확립해 간 심볼리 루돌프에게, 해외 원정의 소문이 소원을 담아 돌아다녔다. 그런 의미에서 심볼리 루돌프의 유럽 원정은 놀라움보다 납득하며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때까지 소문이 난 것은 어디까지나 심볼리 루돌프 단독 원정인 것이다.
해외 원정에서의 대동마의 중요성은 지금에야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당시 그러한 인식은 경마계에서도 거의 공유되지 않았다. 생전의 와다 씨와 교류가 있거나, 어쩌면 다른 어떤 호스맨보다 와다 씨의 경마에 대한 이념과 철학을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후지사와 카즈오 조교사조차 10년 이상 뒤인 96년, 97년 타이키 블리자드의 두 차례에 걸친 브리더스C 원정 때, 96년에는 붙였던 대동마를 7년에는 붙이지 않은 결과 현지에서 말의 멘탈 컨트롤에 실패해,
「왜 대동마를 데려오지 않았던 걸까!」
라 후회했다고 할 정도로, 일본 경마계 자체가 해외 원정에서 대동마의 중요성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그런 당시에, 일본 더비를 제패한 시리우스 심볼리를 대동마로서 유럽에 원정을 보낸다는 것은 꽤나 뜻밖의 결정이었다.
일반인에게는, 시리우스 심볼리가 전년도의 심볼리 루돌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마산가에게 있어 최대의 영예인 일본 더비(G1)을 제패한 것이, 와다 씨에게 최후의 꿈으로서 해외 제패의 꿈, 해외 제압을 위한 원정을 결의하게 했다라는 식으로 설명됐다. 확실히 시리우스 심볼리도 더비마이고, 6전 4승 2착 1회 1착 입선 실격 1회 일본 더비(G1) 우승이라는 전적은 해외에 나가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리우스 심볼리의 경마에 심볼리 루돌프 정도의 안정감이나 강함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 결정 과정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이런 소문이 도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해외 원정을 떠나면, 니혼야나기 구사를 떠날 수 있으니까...」
그 후 사실의 흐름은, 이 소문을 뒷받침하는 것뿐이었다. 먼저, 시리우스 심볼리와 함께 유럽으로 향할 터였던 심볼리 루돌프가 타카라즈카 기념 직전에 근육통이 발생해 타카라즈카 기념뿐 아니라 해외원정 자체를 그만두었음에도, 시리우스 심볼리의 원정이 중지되는 일은 없었다. 또, 새로운 대동마가 붙는 일도 없이 시리우스 심볼리는 단신으로 유럽에 향하게 되었다. 더욱이, 시리우스 심볼리의 유럽 원정은 심볼리 목장의 스태프에 의해서만 진행되고, 니혼야나기 구사의 관계자가 관계되는 일은 없었다.
『이방인』
그리고, 홀로 유럽 경마 속으로 내던져진 시리우스 심볼리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유럽 경마에서 나아가게 되었다.
우선 영국으로 건너간 시리우스 심볼리를 받아들인 것은, 와다 씨와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J · 윈터 구사였다. 하지만, 이때까지 계속 일본에서 달려온 시리우스 심볼리에게 있어, 유럽의 마장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세계였다. 아무래도, 잔디의 질부터가 전혀 달랐다. 일본의 가벼운 잔디에 익숙한 시리우스 심볼리는, 천연 그대로 다리에 얽혀오는 깊은 잔디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첫 조교에서는, 빠르게 걷는 것만으로 더 달릴 수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괴로운 환경 속에서도, 시리우스 심볼리는 일본 더비마의 간판을 짊어지고 있었다. 또, 일본에서는 그를 취재하고, 응원하기 위해 수많은 경마 기자나 팬들이 영국으로 몰려들었다. 현지에 도착하고 시간이 없어 아직 환경에 충분히 익숙해지지 않은 시리우스 심볼리였지만, 원정 전부터 짜여진 예정대로의 레이스에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상태로 내몰리고 있었다.
시리우스 심볼리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출주한 것은, 유럽의 여름 그랑프리라고 할 수 있는 K 조지 6세 & Q 엘리자베스 2세 S(영국G1)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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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글 : https://retsud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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