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아(蕩児)의 귀환』
유럽에서의 약 2년 에 걸친 원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시리우스 심볼리였지만, 오랜 원정과 이국에서의 생활이 그에게 강요한 대가는 컸다. 가네상(프랑스 G1) 7착을 마지막으로 일본에 돌아온 시리우스 심볼리는 원래부터 신경질적이던 기성이 더욱 나빠져, 나쁜 쪽의 의미로 「말이 변한 것처럼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인간의 사정에 농락당해, 끝내는 낯선 스태프, 환경 속에 내던져진 채 2년을 보내게 된 시리우스 심볼리는 자신의 불우함 속에서 인간에 대한 불신감을 품게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2년 간의 국내 공백은 팬들 사이에서도 시리우스 심볼리를 잊혀진 존재로 만들었다. 국내에서의 복귀전이 된 마이니치 왕관(G2)에서는 3번 인기를 받았던 2년 전의 더비마였지만 여기서 인기를 배신하는 8착으로 패배하고, 이어지는 천황상 · 가을(G1)도 보여주는 것 없이 9착으로 침몰했다. 그러자 팬들은 이 두 싸움에서 시리우스 심볼리를 단념한 것인지, 결국 그는 귀국 후 단 한 번도 1번 인기를 받지 못했다.
『폭행범 시리우스 심볼리』
시리우스 심볼리가 마지막으로 경마 팬들을 소란스럽게 한 것은 그 이듬해인 88년, 전년도에 이어 출주한 마이니치 왕관(G2)였다. 하지만 그것은 4세의 괴물 오구리 캡을 추격해 1과 1/4 마신 차로 2착에 든 것 때문이 아니다. 시리우스 심볼리는, 레이스 전에 엄청난 불상사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그 해에도 두 번 출주해 미승리였던 시리우스 심볼리였지만, 직전 경주인 오픈 특별에서는 오랜만에 2착에 들어가 연대를
달성한 것도 있어, 4번 인기를 받았다. 그런데 이 날의 시리우스 심볼리의 흥분 상태는 특히 심했다. 그리고 무려 2번 인기인 전년(1987년)의 최우수 고마 암말, 그 해도 봄에 스프린터즈 S(G2)와 케이오배SC(G2)을 이긴 명암말 다이나 액트리스의 옆구리에 돌려차기를 먹인데다, 레전드 테이오에게도 덤벼들어 이번에는 왼쪽 어깨를 걷어차버렸다.
결국 다이나 액트리스는 큰일로 번지지 않아 레이스에는 출주했지만, 직선에서 뻗지 못하고 4착으로 패배했다. 다이나 액트리스의 안장 위는 얄궂게도 오카베 기수였는데, 그가 말하긴 다이나 액트리스는 레이스 전에 걷어차인 충격으로 말이 달릴 기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또한, 또 한 마리의 피해자인 레전드 테이오는 걷어차인 탓에 제대로 걷지 못해 불쌍하게도 발주 제외가 되어버렸다. 이래서는 레전드 테이오 진영은, 기분이 언짢을 수 밖에 없다. 레전드 테이오는 7개월의 휴양이 끝난 직후였고, 진영은 여기서 반응을 보고 천황상 · 가을(G1)로 진행하는 로테이션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발주 제외를 당했으니 레전드 테이오는 이어지는 천황상 · 가을(G1)에, 반년 이상의 공백을 끼고 별안간 실전으로 향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해프닝에 크게 당황한 인간들을 뒷전으로, 「폭행범」 시리우스 심볼리는 두 마리의 라이벌을 걷어차고 침착해졌는지 시치미를 떼며 레이스에 출주했다. 게다가 여기서 대패라도 해준다면 몰라도 직선에서는 갑자기 뛰어난 다리가 부활해, 괴물 오구리 캡에게는 미치지 못했지만 피해자 다이나 액트리스보다 선착해 2착으로 들어왔으니 모양이 좋지 않다. 관계자들도 이래서는 부활을 기뻐할 수 없었다.
그 후 시리우스 심볼리는, 전년도와 같은 로테이션으로 천황상 · 가을(G1)으로 나아갔지만, 보여주는 것 없이 7착으로 패배했다. 그리고, 이 레이스가 시리우스 심볼리 최후의 레이스였다. 참고로 마이니치 왕관(G2)에서 걷어차인 레전드 테이오는 이 레이스에서 3착, 다이나 액트리스는 4착으로 들어가 시리우스 심볼리보다 확실하게 선착해 앙갚음을 했다.
현역에서 은퇴해 종마가 되게 된 시리우스 심볼리의 통산 성적은 26전 4승으로, 결국 일본 더비(G1)이 시리우스 심볼리의 생애 최후의 승리가 되었다.
『사과의 노래』
종마가 된 시리우스 심볼리는, 명종마 모가미의 후계라는 혈통, 그리고 「일본 더비마」의 금간판*도 도와줘서일까, 초반에는 매년 50 ~ 60두 정도 교배를 했다. 수만 본다면, 충분히 인기 종마라 해도 된다. (*금으로 새긴 간판. 크게 홍보하는 것)
하지만, 수가 많다고 해서 질도 그만큼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리우스 심볼리는 번식 암말의 질만 본다면 결코 배합 상대를 잘 만난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산구를 내지 못한 것도 있어, 인기도 점차 떨어져갔다.
시리우스 심볼리는 이윽고 몬베츠의 어느 목장에서 종마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심볼리 루돌프는 고향의 몬베츠 · 심볼리 목장으로 가게 되었지만, 시리우스 심볼리 쪽은 모가미 × 파솔론이라는 혈통으로 대부분의 번식 암말에게 어느 한쪽의 피가 들어있는 심볼리 목장의 번식 암말과 배합할 수단이 없다는 사정도 있어 다른 목장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시리우스 심볼리 산구에서는 준 오픈전을 이겨 오픈전에 들어가는 말은 나왔지만, 중상을 이기는 산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산구는 스태미너가 풍부하고 고령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달리는 경향이 있었기에, 한때는 장애물 레이스에서 산구를 가끔 볼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의 결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활약마를 내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낸 시리우스 심볼리의 노년은, 시정마*로서의 업무가 많았던 것 같다. (*교배 전, 흥분한 암말에게 숫말이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암말을 달래는 역할)
시리우스 심볼리의 방목지는 근처를 JR이 지나고 있었기에 기차 안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시리우스 심볼리를 방문한 사람이 목장 사람의 허락을 받아 사과를 주자, 매우 기쁜듯이 먹었다. 그래서 시리우스 심볼리는 사과를 좋아하는가 싶어 후에 목장 사람에게 물어보니, 시리우스 심볼리는 사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목장 사람은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와준 사람이 있어, 기뻐서 먹었을 것이라 대답했다.
그런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있던 시리우스 심볼리였지만, 2012년 4월 8일에는 30세로 천수를 다했다고 한다. 1985년 더비마인 그였지만, 같은 해의 2관마인 미호 신잔과는 끝내 대전하는 일은 없었다. 이것 또한, 경주마를 둘러싼 운명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인 것이다.
『천랑성의 만가*』
(*상여노래, 죽은 이를 애도하는 곡)
신세기를 맞이한 현재, 일본 유력마의 해외원정도 당연한 것이 되고 있다. 1998년 시킹 더 펄, 타이키 셔틀을 시작으로 엘 콘도르 파사, 아그네스 월드 등 수많은 강호들이 유럽의 g1에서 전과를 올리고, 더욱이 홍콩에 이르러서는 2001년에 일본마가 G1을 3연승했다. 근래의 일본 경마를 보면 더 이상 「해외의 레이스를 이긴다」는 것 자체는 드문 일도 아니고, 이제는 「해외의 큰 G1을 이긴다」는 것이 아니면 높은 가치의 뉴스로 인정해주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일찍이 일본마가 해외의 일류 레이스로 원정을 떠나 세계의 강호를 상대로 호각의 경마를 한다는 것 등이 그저 꿈만 같았던 시대에 유례없는 해외 대원정을 결행한 한 마리의 더비마를 떠올려도 좋지 않을까. 확실히 시리우스 심볼리가 해외로 떠난 배경에는 결코 덮어놓고 칭찬할 수 없는 사정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일은 말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시리우스 심볼리의 생산자 겸 오너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호스맨으로 알려진 와다 씨는 이미 작고했다. 그는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에 대해 결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로 떠났다. 또, 「마산의 예술가」라고까지 불린 와다 씨였지만,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 이후는 과거의 적극적으로 말 생산에 몰두하는 열정을 잃었다고 한다. 와다 씨를 잘 아는 주변에서는, 와다 씨는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을 계기로 구태의연한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의 경마계에 절망한 것 아닌가 하고 말하지만, 일의 진상을 이제서는 알 길이 없다.
또한,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의 또다른 당사자인 니혼야나기 토시오 조교사에게도,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은 깊은 상처를 남겼다. 니혼야나기 조교사는 니혼야나기 조교사대로, 후에 시리우스 심볼리의 유럽 원정에 대해 물었을 때에
「해외 원정 같은 거 하지 않았더라면, 더 대단한 전적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라고 감출 수 없는 후회를 이야기했다. 수많은 명마를 돌보았던 니혼야나기 조교사였지만, 시리우스 심볼리의 소재는 그러한 명마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렇기에 그런 시리우스 심볼리와 그런 관계밖에 될 수 없었던 것은, 훗날까지 남는 후회가 된 것 같다.
참고로, 시리우스 심볼리의 주전 기수인 카토 카즈히로 기수는 시리우스 심볼리가 은퇴하고 수 년 후, 니혼야나기 구사를 떠나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 직후에는 니혼야나기 구사로부터 카토 기수에게 기승 의뢰가 전혀 없었던 것 때문에, 「니혼야나기 조교사와의 불화인가」라는 소문도 돌았지만 실제로는 그런 터무니없는 사정은 아니었던듯, 머지않아 니혼야나기 구사로부터의 의뢰도 재개되었다.
프리랜서가 된 후, 카토 기수는 그 자유로움을 살려 여러 구사의 말에 기승해 승리를 거듭했고, 호쿠토 베가로 엘리자베스 여왕배(G1)을 제패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베테랑 기수로서의 경험을 살려 활약했다. 카토 기수는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을 계기로 「압박에 강한 기수」라 평판이 높아져 외부로부터 큰 레이스의 기승 의뢰도 늘었지만, 어쩌면 그 평판도 프리랜서가 된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도, 2005년에는 기수를 은퇴해 현재는 조교사로서 경마계에 계속해서 관여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말려들게 해 큰 사건이 된 시리우스 심볼리 소동이었지만, 그 후 시간은 흘러 관계자들은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말은 인간과 달리, 자신의 의사로 자신의 길을 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의 형편에 농락당해, 다른 어떤 말보다도 강하게 빛날 수 있었던 소질을 발휘할 수 없었던 시리우스 심볼리의 불우한 생애는 서글프다.
늑대의 눈과 같이 천공에서 가장 강하게 빛나, 그 어떤 신의 편도 들지 않고 구태여 하늘로 날아가는 외로운 늑대가 된 고고한 별... 그런 슬픈 별의 이름을 마명으로 받고, 그 뛰어난 재능 때문에 운명을 농락당한 시리우스 심볼리는 자기자신의 운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 모든 열전은 원작자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있습니다
원본글 : https://retsud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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