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4월 10일 생.
2004년 4월 5일 사망.
수컷. 흑갈색 털. 나카무라 코조(우라카와) 산.
아버지 : 시 호크, 어머니 : 테스코 펄 (모부 : 테스코 보이)
카토 슈호 구사 (미호)
통산 성적은 8전 4승 (구 3~4세 때).
주요 승리는 일본 더비(G1),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G1), 교도통신배 4세 스테이크스(G3).
※ 이 글은 열전마의 현역 당시 마령 표기에 따라 구 연령(세는 나이) 표기를 사용합니다
『질풍의 더비마』
「일본 더비란 무엇인가」
─ 경마 관계자들에게 이 물음을 던진다면, 과연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아마도 「일본 경마계 최고의 격식을 가진 레이스」라는 것이, 가장 무난한 우등생 같은 대답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흔해빠진 대답으로는 마력(魔力)이라 할 수 있는 더비의 매력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일찍이 오카베 유키오 기수와 함께 관동, 그리고 일본 경마계를 이끈 시바타 마사토 기수는 1993년에 위닝 티켓과 만나기 전까지 약 20년에 걸친 기수 생활 속에서, 통산 1700승 이상의 승리를 쌓아나가면서도 좀처럼 일본 더비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더비를 이긴다면, 기수를 그만둬도 좋다」
라고 공언하기까지 이르렀다. 또 1997년에 서니 브라이언으로 더비를 제패한 오니시 나오히로 기수는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기승조차 자유롭지 못해 지방 원정으로 겨우 생활할 수 있었던 불우한 시절에도 더비의 날 만큼은 도쿄에 돌아와 레이스를 보고 있었다고 한다. 설령 그 주말에 기승 예정이 하나도 없다 하더라도,
「더비만큼은 특별하니까...」
라고 말하며 일반 팬들과 섞여 스탠드에서 레이스를 보고 있었다고 하니, 그 마음은 어중간한 것이 아니다.
이런 더비에 대한 생각은 그 무엇도 여기서 말한 일부 기수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기수, 조교사, 마주, 생산자... 여러 단계에서 경마에 관련된 호스맨들의 대부분이 더비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더비가 이렇게 호스맨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魔力)의 요인으로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을 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더비의 특별함을 설명할 수 없다.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나갈 수 없는 것은, 다른 클래식 레이스도 마찬가지다. 또한 최강마가 모이는 레이스라는 의미라면, 다른 세대의 강호나 외국산 강호들과도 대결하는 아리마 기념, 혹은 세계의 강호가 초대되는 재팬 컵(국제 G1) 쪽이 더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격식이 높은 레이스라면 더비와 맞먹는 격이라는 춘추의 천황상(G1)도 「특별한 레이스」가 될 자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레이스를 가장 추구하는 사람은 더비를 가장 추구하는 사람과 비교하면 훨씬 적다. 더비는 지금도 대부분의 호스맨에게 있어서 「동경」과 같은 것이며, 다른 G1 레이스와 비교해도 계속해서 「특별한 레이스」인 것이다.
1990년 5월 27일, 1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날에 걸맞게 도쿄 경마장은 땅을 흔드는 듯한 대환성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함성은 1년에 한 번 펼쳐지는 떠들썩함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윽고 경마사에 남을 전설로 변해갔다. 이날 스탠드는 사회현상이 된 오구리 캡의 인기로 인해 새로운 경마의 지지층이 된 젊은 팬들, 그리고 여성 팬들의 모습으로 화려함을 더해 그야말로 경마 신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켜본 전장에서는 그런 화려함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투가 펼쳐졌고, 그 사투를 제패한 승자·아이네스 후진 그리고 기수·나카노 에이지에게 20만명에 가까운 대관중이 쏟아낸 찬사는, 특별한 레이스라는 분위기와 합쳐져 전에 없던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싸움 후 스탠드는 한 몸이 되어 사투의 승자에게 축복의 콜을 쏟아냈다. 이제는 전설이 된 「나카노 콜」이다. 지금은 G1의 대명사가 된 기수에 대한 「콜」이지만, 당시 경마장에 그런 관습은 없었다. 그날 펼쳐진 싸움에 취해,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떠오른 감동을 표현하기 위해 대관중의 일부가 시작한 「나카노 콜」은, 주위 팬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흡수하며 약 20만 명에게 전파되며 퍼져나갔다. 그들이 하나가 되어 찬사를 보냈던 것은 질풍처럼 후추를 달려간 제 57대 일본 더비마 아이네스 후진과 그 안장 위의 나카노 에이지 기수였다.
『아사카 오*의 목장』
(* 1968년 킷카상 우승마)
아이네스 후진은 우라카와·나카무라 코조 목장에서 태어났다. 나카무라 목장이 말 생산을 시작한 것은 코조 씨의 아버지·키치베 씨라고 되어 있는데, 이건 당시에는 아직 대를 이을 뿐인 아들이었던 코조 씨가 아버지에게 강하게 권유했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쌀과 아랍말 생산의 겸업농가였던 나카무라 목장은 어느덧 벼농사를 그만두고 서러브레드 생산으로 확장해, 어느샌가 말 전문 목장이 되어있었다.
대규모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먼 개인 목장으로 말 생산을 이어가고 있던 나카무라 목장에 황금기가 찾아온 것은, 1968년이었다. 나카무라 목장의 생산마인 아사카 오가 클래식 전선을 무대로 타케시바 오, 마치스와 함께 「3강」으로 나란히 불리는 활약을 펼치며 킷카상을 제패한 것이다. 킷카상 외에도 야요이상, 세인트라이트 기념 등을 이긴 아사카 오는 통산 24전 8승의 성적을 남기며 두말없이 나카무라 목장의 대표 생산마가 되었다.
하지만 그 후, 나카무라 목장에서는 평판 좋은 유명마는 출현하지 않게 되어, 한때는 경영 위기 소문조차 흐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나카무라 목장을 지탱한 것은 일찍이 그들이 배출한 아사카 오의 존재였다. 경영이 어려워 마산을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했다는 키치베 씨와 코조 씨는 그때마다
「킷카상마를 배출한 목장을 잃을 수야 있겠나」
라고 스스로를 북돋아 주고, 그 긍지를 버팀목으로 목장을 계속 지키고 있던 것이다.
『행운』
아이네스 후진의 혈통은 아버지가 스태미나가 풍부한 산구를 배출하는 게 특징인 당시의 일류 종마 시 호크, 어머니가 나카무라 목장의 기초 암말계에 속하는 테스코 펄이다. 하지만 이 배합이 완성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필요했다.
아이네스 후진의 출생의 운명을 이야기하려면 아이네스 후진 탄생보다 10년 정도 더 과거로 갈 필요가 있다. 처음에 키치베 씨가 시 호크를 교배하려고 생각한 것은 테스코 펄의 어머니, 즉 아이네스 후진의 할머니인 무츠미 펄이었다. 시 호크는 당시 많은 활약마를 배출하고 있던 신진 씨수말이었다. 본래 시 호크의 교배권이 있던 키치베 씨는 대대로 중후한 씨수말과 교배된 무츠미 펄의 암말계에, 더욱 스태미나를 강화하기 위해 시 호크를 교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연 상황이 달라졌다. 키치베 씨가 「밑져야 본전」 정도의 기분으로 응모했던 테스코 보이의 교배권이 고배율을 뚫고 당선된 것이다.
테스코 보이는 생애 다섯 번의 중앙 경마 리딩 사이어에 빛나는 대종마다. 후에 몬테 프린스, 몬테 패스트라는 천황상마 형제, 그리고 더비마 위너즈 서클을 배출해 낸 시 호크도 종마로서 충분한 실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지만, 토쇼 보이는 필두로 하는 역사적인 명마를 몇 마리나 내보낸 테스코 보이와 비교하면 역시 한 단계 떨어진다고 할 수밖에 없다.
테스코 보이는 일본 경종마 협회의 소유마로 추첨에 당첨되기만 하면 작은 목장에서도 살 수 있는 가격으로 교배할 수 있다. 그리고 산구가 무사히 태어나기만 하면 그 아이는 테스코 보이의 아이라는 것만으로 원하는 사람이 많아져 높은 가격에 팔린다. 그래서 테스코 보이의 교배권 추첨 경쟁률은 어느 해에나 높았다. 그 해 준비된 50두 정도의 교배권에 응모는 무려 700마리였다고 하니, 테스코 보이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 고배율 속에서의 당첨은 나카무라 목장에 있어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런 상황이 되어 혈통표를 되짚어 보니 대대로 무츠미 펄의 암말계에는 스태미나 타입의 중후한 종마가 교배되어 있는 반면, 스피드는 부족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본 경마에 스피드 혁명을 일으킨 테스코 보이를 붙이는 것은 이치에 맞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키치베 씨는 급히 예정을 변경해 이해는 무츠미 펄에 테스코 보이를 교배하기로 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후에 아이네스 후진의 어머니가 되는 테스코 펄이었다. 그녀가 무사히 태어나자,
「나카무라 목장에서 테스코 보이의 아이가 태어났다」
라고 들은 두 개의 구사에서 금세
「우리 쪽에 맡겨주지 않겠나」
라고 제의가 있었다고 한다.
『운명』
하지만 테스코 펄이라고 이름 붙여져 나카무라 목장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암말은, 2세 여름에 큰 병을 앓고 말았다. 복통을 일으켜 괴로워하다 발견되어 수의사에게 보여주었는데,
「손쓸 도리가 없습니다」
라고 선고받았다고 한다. 테스코 펄에게는 경주마는 물론, 은퇴 후에도 번식 암말로 만들어 목장에 데려가는 큰 기대를 걸었던 키치베 씨는 완전히 침울해졌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거라면 맛있는 걸 먹여주고 싶어」
하고 억지로 테스코 펄을 수의사에게서 목장으로 데리고 돌아갔다.
그러자 수의사와 크게 다투면서 데려온 테스코 펄은 물을 원하는 만큼 마시게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였더니 죽음의 늪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결국 테스코 펄은 병의 영향으로 경주마가 되지는 못했지만, 번식 암말로서는 수태율이 지극히 높은 나카무라 목장의 대표 번식 암말이라고도 할 만한 존재가 되었다. 키치베 씨는 테스코 펄에 매년 여러 종마를 교배하고 있었는데, 문득 테스코 펄에 무츠미 펄과 교배하지 못한 시 호크를 교배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테스코 보이로 스피드를 주입한 피에 다시 한번 시 호크를 붙이는 걸로 스피드, 스태미나의 밸런스가 잡힌 아이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테스코 펄이 시 호크와의 사이에서 낳은 7번째 아이는, 흑갈색 털의 숫말로 몸의 탄력성이 강한 아이였기 때문에 나카무라 부자도
「좋은 아이가 태어났어」
하고 기뻐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시점에서 그 숫말, 후에 아이네스 후진이 되는 아이가 머지않아 어느 정도의 활약을 해 줄지 알 리는 없다.
다음으로는 그를 맡길 조교사가 누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중앙 경마의 조교사 정도가 되면, 자신의 구사에 들어갈 말을 찾기 위해 스스로 홋카이도 등의 마산지를 돌아다니는 건 일반적인 일로, 미호의 카토 슈호 조교사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리고 카토 구사와 나카무라 목장에는 카토 조교사의 아버지 대부터 연이 있었다. 그 때문에 카토 조교사가 홋카이도에 올 때마다, 항상 나카무라 목장의 말도 보러 가는 것이 습관이었다.
이때도 나카무라 목장에 온 카토 조교사는, 이 숫말을 잠깐 보았을 때
「이 녀석은 달린다...!」
라는 직감이 번뜩였다고 한다. 카토 조교사는 자신의 직감에 따라 이 숫말을 자신의 구사에서 맡기로 결정하고, 새로이 마주 자격을 얻은 신진 마주·코바야시 마사아키 씨를 소개했다. 이리하여 경주명도 「아이네스 후진」으로 정해진 이 망아지는 카토 구사에서 데뷔하는 것이 결정된 것이다.
『카토 조교사의 생각』
큰 그릇이라 기대하고 아이네스 후진을 자신의 구사에 들어오게 한 카토 조교사였지만, 아이네스 후진의 성장은 그의 안목을 배신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네스 후진은 어느덧 소문난 말로 미호에 알려진 존재가 되어 있었다.
아이네스 후진의 조교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카토 조교사는 빠르게도 여름 데뷔를 시야에 넣게 되었다. 슬슬 마지막 조교를 걸고 본격적으로 레이스에 대비할 시기가 되어, 카토 조교사는 아이네스 후진의 안장 위에 어느 기수를 태울 것인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감각으로 마지막 조교에서 어느 기수를 태운다는 것은 그 다음 레이스에서 누구를 태운다는 것과 직결된다. 이건 아이네스 후진의 장래에 있어 큰 문제다.
카토 조교사는 아이네스 후진의 기수를 누구로 할지를 생각하며, 미호 트레센의 스탠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는 여름 경마가 한창이고, 현역마들은 대부분 니가타나 하코다테로 원정을 떠났다. 말을 타는 것이 일인 기수들에게는 말이 없는 미호에 머무를 이유도 없다. 말도 기수도 거의 없는 코스는 한산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카토 조교사가 본 것은, 원래라면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는 남자가 멍하니 서 있는 광경이었다. ...바로 나카노 에이지 기수였다.
『기수 실격』
사실, 이때 나카노 기수는 은퇴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늘지 않는 기승 횟수, 늘지 않는 승리 수에 초조한 나머지 주량이 한계를 넘는 일이 잦고 가뜩이나 살이 찌기 쉬운 체질에 더욱 뚱뚱해져, 마침내 기수로서의 체중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에서 기수를 계속하는 이상, 무겁더라도 50kg 정도로 억제해야 하는 체중이, 심할 때는 60kg 가까이 된 적도 있었다. 이래서는 안장 없이 기승한다 해도 레이스의 부담 중량을 크게 초과하게 된다. 물론 안장 없이 탈 수 있는 레이스는 애초부터 없다. 기승 의뢰의 관리가 허술했던 적도 있고, 모처럼 기승 의뢰가 있어도 주말에 체중을 줄이지 못해 강제로 교체되는 일도 있었다.
조교사들은 의뢰를 받은 이상, 나카노 기수가 타는 것을 전제로 해 결사적으로 말을 완성시켜 왔다. 그게 직전에 와서
「체중을 줄이지 못해 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라고 해서야, 참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다른 기수에게 의뢰하려고 해도 그 무렵에는 실력 있는 기수는 거의 기승마가 결정되어 있어, 실력적으로는 꽤나 떨어지는 기수를 태울 수밖에 없게 된다. 조교사나 스태프의 분노는 당연히 나카노 기수에게 향하게 된다.
「체중을 유지하는 것 정도는 기수의 최소한의 의무다. 그것조차 해내지 못하는 저 녀석에게, 소중한 말은 맡길 수 없다. 저 녀석한테 부탁하지 않아도 그 밖에 기수는 얼마든지 있어. 더 젊고 생기 있는, 무엇보다 체중 유지가 잘 되어 있어 직전에 『못 탑니다』 같은 말을 하지 않는 기수가 얼마든지...」
이렇게 해서, 나카노 기수에의 기승 의뢰는 눈에 띄게 줄어 갔다. 가끔씩 의뢰가 있어도 도저히 승리를 노릴 수 없는 말뿐이다. 구사 측에서 보면 언제 취소될지 모르는 기수를 기대마에 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서 점점 승리 마크가 증가하지 못하게 된 나카노 기수는, 자포자기해 술을 더 마셨다. 완전히 악순환이다.
게다가 이 해 나카노 기수는, 악순환을 끊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결정적이 되는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여름이 되어 예년처럼 니가타에 원정을 떠난 나카노 기수는, 오토바이 운전 중에 자신의 부주의로 버스와 접촉사고를 낸 것이다. 가뜩이나 기피 받기 일쑤였던 나카노 기수의 상황은 이걸로 인해 결정적이 되고 말았다. 경마장이 가장 붐비는 개최일인데도, 아무리 기다려도 나카노 기수에게는 기승 의뢰가 오지 않았다.
말을 타는 것이 일인 기수에게 있어 말을 태워주지 않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자신보다 띠동갑 이상 어린 기수들이 많은 의뢰를 받아 하루에도 몇 레이스씩 기승하는 것을 곁눈질로 보면서, 자신은 말을 탈 수조차 없다. 나카노 기수에게 있어 이 해의 니가타 원정은, 데뷔 이래 가장 외로운 여행이 되어 버렸다.
나카노 기수는 이때 반은 자포자기가 되어, 그리고 나머지 반은 더 있을 수 없게 되어 니가타 개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니가타에서 일찍 철수해 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니가타에서 철수해도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는 일도 없이 갈팡질팡 사람도 말도 없는 미호 트레센에 혼자 서 있었던 것이다.
『더비를 따보고 싶지?』
카토 조교사는 나카노 기수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에이지, 어때 요즘」
나카노 기수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탈 말이 없어서 이쪽으로 돌아왔어요」
나카노 기수로서는 둘러댈 것 없이 사실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카토 조교사도 미호의 조교사로서 나카노 기수의 근황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그걸 들은 카토 조교사는 나카노 기수가 정직하게 대답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 녀석도 아직 포기한 것이 아니다. 이 녀석 정도의 기수가 이대로 묻혀 버리는 건 아깝다」
다음 순간, 카토 조교사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우리 (구) 3세 중에 아직 기수가 정해지지 않은 게 있는데─. 너, 더비 따보고 싶지?」
나카노 기수는 몸을 떨었다.
나카노 기수 자신이, 이런 생활을 계속해 봤자 방법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은퇴」 두 글자가 머리에 아른거리는 일도 있었다. 아내로부터
「은퇴하고 싶다면 자유롭게 해도 돼. 하지만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은퇴가 아니라면, 후회하지 않을까?」
라고 격려를 받고, 기수 생활을 계속하는 것을 결의했지만 잃은 신용까지 돌아오는 것은 아니고, 기승 의뢰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나카노 기수가 소개받은 것이, 데뷔를 앞둔 아이네스 후진이었다.
나카노 기수가 본 아이네스 후진은 경주마 치고는 정말 사람에게 친근하고, 너무나 상냥한 말이었다. 손을 가까이하면 날름날름 핥아 주고 응석 부리는 그 모습은, 나카노 기수에게
「분명 사람에게 괴롭힘당한 적 없는 말이겠지」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말에 올라타 보고, 나카노 기수는 직감했다
(이 녀석은 달린다!)
부드러운 마체, 고분고분한 기성, 그리고 발군의 기승감. 그는 알았다. 어려울 때 내뻗어 온 구원의 손길은 그가 지금까지의 기수 생활에서 만나본 적이 없는 큰 그릇이라는 것을.
「─너, 더비 따보고 싶지?」
나카노 기수는 카토 조교사의 말이 머릿속에 반복해서 메아리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모든 열전은 원작자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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