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열전마의 현역 당시 마령 표기에 따라 구 연령(세는 나이) 표기를 사용합니다)
『가장 밝게 빛났던 땅에서』
장내를 둘러싼 큰 레이스 특유의 기대에 가득차고, 긴장감이 가득했던 공기가 비명과 절규로 인해 찢어졌다. 가속하던 라이스 샤워가 돌연 앞으로 고꾸라지며 마토바 기수가 내던져진 것이다.
마토바 기수를 떨어뜨리고도 라이스 샤워는 여전히 발버둥치고 있었다. 왼쪽 앞자리를 땅에 대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듯 쓰러지는 라이스 샤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누가 보아도 명백했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도.
왼쪽 앞다리 제 1지관절 개방 탈구. 게다가 탈구된 곳보다 아랫 부분의 뼈는 산산조각 나 있었다. 요도를 사랑하고, 요도에서 빛났던 최후의 스테이어에게 기다리고 있던 결말은, 부상이 너무나 심해 마체를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해 그 자리에서 안락사 처분이 취해지는 너무나 슬픈 최후(最期)였다.
『잊을 수 없는 자에게』
갑작스러운,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닥친 라이스 샤워 진영 사람들의 충격은 컸다. 악몽이라면 깨어나게 해줘. 그렇게 생각하거나, 혹은 소리를 질렀을게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라이스 샤워 진영 사람들이 터벅터벅 돌아가려 하자 마토바 기수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꺼냈다.
「라이스가 죽었을 리가 없다. 다시 한 번 더 보고 오겠다」
그리고 그는 주위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말리는데도 여전히 라이스 샤워 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제 눈을 감고, 차가워져 있는 파트너에게. 그런 그를 현실로 되돌린 것은 이즈카 조교사의 말이었다.
「히토시, 이제 그만둬라」
마토바 기수는 그 말로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포기하고 모두와 함께 돌아갔다. 마토바 기수 정도의 백전연마의 베테랑 기수라도 약 3년에 걸쳐 함께 싸운 전우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그런 그에게 현실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삼위일체로 함께 싸워온 이즈카 조교사의 말뿐이었다.
그런 대화 후, 할 말조차 잃고 차로 돌아간 마토바 기수였지만, 그런 그 또한 라이스 샤워 위에서 내던져졌을 때에 전신을 강하게 부딪혔다. 하지만 그는 레이스 후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아프다」
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토바 기수는 라이스 샤워가 처음 자세를 무너뜨렸을 때,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정신없이 고삐를 당겼다. 그 후 마토바 기수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내던져졌지만, 말에게 깔리지는 않았다. 라이스 샤워가 마토바 기수의 마지막 고삐에 반응해, 있는 힘껏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만약 라이스 샤워가 마토바 기수의 고삐에 반응하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더라면... 마토바 기수는 아마도 내던져졌을 때에 라이스 샤워에게 깔렸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그렇게 됐더라면 아무리 라이스 샤워가 작은 체구라고 하더라도, 이 날의 마체중은 438kg이다. 마토바 기수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반적인 말의 경우 낙마할 정도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할 수 있다. 하물며 자기자신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직후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은 상당히 현명하고, 의지가 강하고, 그리고 기수를 신뢰하고 있는 말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이스 샤워는 반응했다. 그건 마토바 기수에게 있어 라이스 샤워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원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보다 몇 배나 아픔을 느낀 녀석이 있어...」
그런 비통한 기분이, 결국 마토바 기수에게
「아프다」
라는 한마디를 할 수 없게 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재기불능, 혹은 자신의 죽음이라는 대참사가 될 수 있었던 사고 일보직전에 발을 디뎠던 마토바 기수는
「라이스에게 구원받았다」
라는 마음이 있었던 만큼, 전우의 「희생」으로 살아남아버린 자기자신이 누구보다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그 시선의 저편』
라이스 샤워의 이야기는 1995년 6월 4일로 끝을 고했다. 수많은 G1마들에게 더해지는 종마로서의 이야기는, 라이스 샤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이스 샤워의 이야기는 그 혼자만의 이야기로 완결된 것이다.
라이스 샤워 사후 한동안은 관계자들의 충격과 비타의 깊이를 말해주듯이,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에 나오는 일이 적었지만 최근에는 점차 여러 에피소드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흘러, 경마계는 더욱 크게 변화해 갔다. 라이스 샤워를 직격했던 스테이어 종마를 꺼리는 징후는 당시 초년도 산구가 4세 클래식 전선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선데이 사일런스의 출현과 대성공에 의해 결정적이게 되었다. 스테이어 혈통의 말들은 가뜩이나 스피드마가 우세했던 레이스 편성 속에서, 미국에서 온 괴물들 앞에 차례차례 도태되어 갔다.
한때 명종마였던 라이스 샤워의 아버지·리얼 샤다이도 이렇다 할 후계 종마는 남기지 못한 채, 2000년을 마지막으로 종마 생활을 은퇴하고, 2004년 5월 26일에 사망했다. 리얼 샤다이의 후계 종마로 기대를 모았던 이부키 마이카구라나 갈레온 등은 뛰어난 자식은 남기지 못하고, 유일하게 오스미 샤다이에게서 97년 더비 그랑프리마인 나리타 호마레가 나온 정도였다. 이런 시대 속에서 만약 라이스 샤워가 살아 종마가 되었다고 해도, 종마로서 인기를 모았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라이스 샤워는 그렇게 죽음으로써 오히려 팬들 사이에서 영원한 존재가 되었다」
라는 평가도 어쩌면 위안이 되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테이어의 가치조차 잊혀졌다고 한다면, 단지 라이스 샤워의 가치만을 후세의 사람들이 이해해 준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라이스 샤워의 주전 기수로 활약했던 마토바 기수도, 2001년 2월을 마지막으로 채찍을 내려놓고 은퇴했다. 숨은 고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화려하고, 스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수수한 달인 느낌이었던 그는 라이스 샤워 사후에도 톱 기수 중 하나로 관동에 군림했고, 후에는 그래스 원더라는 라이스 샤워에 버금가는 명마와 만나 그랑프리 3연패를 달성했지만 그런 그도 마침내 약 25년 걸친 기수 인생의 막을 내리고 조교사로 전향했다. 라이스 샤워의 시대, 스테이어가 최후의 빛을 발하던 시대는 착실히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스 샤워의 싸움은 지나간 시대의 빛바랜 반짝임으로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강한 인상을 우리에게 남겼다. 마토바 기수와의 콤비로 킷카상, 그리고 두 번의 천황상·봄을 제패한 그 기억, 그리고 사라져가는 스테이어의 매력과 반짝임. 비록 그가 시대에게 버림받아도 그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관철하고, 그리고 사라져 갔다. 마치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의 숙명임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마토바 기수도 후일 여러 곳에서 라이스 샤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두 번째 천황상이 끝난 뒤의 라이스 샤워에 대한 코멘트다.
「그래그래, 천황상에서 이때 라이스 샤워는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 눈이 초롱초롱했고. 지금도 그건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일찍이 사냥감을 응시하는 듯한 눈으로 적을 노려보고 있던 관동의 자객이, 2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도달한 것은, 이 부드러운 시선이었다. 과연 그때 그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것들은 너무나도 격렬하게 자신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대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였을까. 그런 수수께끼를 남기고, 그는 교토경마장의 한편에서 지금도 경마를, 시대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다.
※ 모든 열전은 원작자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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